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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6 18:58 수정 : 2005.04.26 18:58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의혹, 이른바 ‘오일 게이트’에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버전은 이런 것이다. “정권 핵심 실세의 비호 아래 유전개발 사업이 추진돼 실세 등 여러 사람이 ‘떡고물’을 나눠먹으려 했는데, 일이 잘못되자 청와대와 정부 관계 부처가 조직적으로 축소·은폐에 나섰다.”

둘째 버전은 이렇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유전개발 사업에 정권 핵심 실세의 이름을 판 사람들이 물색 모르는 철도공사를 속여 ‘떡고물’을 챙기려다 실패했는데, 청와대와 관계 부처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첫째대로라면, 이는 큰 사건이다. 형사처벌이 가능한지는 별개로, 여러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버전이라면, 이는 단순 사기사건에다 정부의 시스템 고장 사고다. 그것도 문제지만,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이제 막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상황에서, 결과가 어느 쪽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가 모르는 내막이나 단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이번 사건은 어느 한 버전의 ‘완승’으로 깔끔하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이나, 의심을 받고 있는 쪽이나 모두 검찰 수사에 관계없이 ‘끝까지 간다’고 공언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검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에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가 아닌지 의심된다.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특검 도입을 당연한 수순으로 내놓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는 아예 믿을 수 없다는 투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아무리 놀랄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더라도, 시비와 의혹 제기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검이 임명돼 몇 달 더 수사하면 그런 의혹이 말끔히 풀릴까? 그것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공식 석상에선 의혹을 제기하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지만, 사석에서는 “별로 나올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도 자료가 없으니까 특별검사로 가자는 것이다. 자료가 있으면 국정조사로 가자고 하지 …”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의혹 제기와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새로 불쏘시개가 생기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짐작된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무엇보다 이번 ‘오일 게이트’의 핵심이라는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기명 전 노무현 대통령후보 후원회장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미 실세로 단단히 찍혀 있다. 본인들은 억울해하겠지만, 인사나 사업 등 어떤 민원도 이들이 끼어들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알려졌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여러 일에 두 사람이 관여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 사람이라면 그랬을 거야’라거나 ‘그런 사람이니까 당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의혹은 이런 정서를 자양분 삼아 자란다. 이런저런 정치적 계산까지 끼어들면, 의혹은 불사조가 된다. 더구나 실제 이들의 처신이 매끄러웠다고 보기도 어렵다.

문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로 인한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거악을 잡아야 할 검찰 인력이 결과적으로 감사 수준으로도 충분했던 사안에 대거 동원된 셈이 된다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꼴이다. 정치권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온갖 추측과 방증을 동원하며 공방을 벌이느라, 스스로 약속한 민생·개혁 법안 처리에 소홀히했다면 그 역시 손실이다. 대통령이 특검을 언급함으로써 검찰 조직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린 것도 있다. 또 에너지 확보가 국가 차원의 과제라면, 이번 ‘오일 게이트’ 때문에 정당하게 추진돼야 할 여러 노력들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국가적 손실이다. 이래저래 게이트 통행료가 비싼 것 같다.

여현호 정치부장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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