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핵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6년 10월 김일성 당시 주석은 옛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당시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탄두가 남한에 1000개 이상 배치돼 있어 이중 2개만 북한에 떨어뜨려도 북한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며 ‘북핵위기’감을 표명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옛날 얘기’를 굳이 오늘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의 위기가 과거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반세기도 넘게 계속된 ‘북핵위기’의 불행한 귀결이다. 북에 대한 핵위협을 포함한 적대정책을 끝내고 그 반대급부로 북의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퍼주기’일까? 서재정/ 미국 코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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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도 넘은 ‘북핵위기’ |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의 최근 발언처럼 미국과 한국정부의 “초점은 현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자회담이 ‘북핵위기’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라면 ‘초점’은 당연히 ‘북핵위기’의 해결이라는 목적에 놓여져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통상 ‘북핵위기’라고 부르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해서 ‘북핵위기’는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반세기의 위기이다.
한국전쟁 개전 2주만인 1950년 7월 9일 맥아더 장군이 보낸 전문 때문에 미 합동참모부는 “맥아더에게 원자폭탄을 사용하도록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려해야 했다. 당시 작전참모였던 찰스 볼티 장군은 미군의 세계군사능력에 별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한국전쟁에 원자폭탄 10~20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전쟁 초기 미 합참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여 핵무기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전세가 미국에 불리하게 되자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다시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11월 30일 트루만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6자회담을 언급하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사실 이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북 핵위협 정책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트루만 대통령의 위협이 단순한 공포용이 아니라 실제로 핵공격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7월부터 이미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다가 불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던 미군은 작전계획을 전적으로 수정했다. 트루만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같은 날 미 공군은 즉각적으로 ‘핵능력’을 포함한 폭격단을 극동사령부에 파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어 12월 9일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 결정 권한이 자신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24일에는 원자폭탄 26개를 사용할 목표물을 지정하기까지 했다. 맥아더 장군은 원자폭탄 30~50개를 투하해서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능 코발트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합참이 임명한 위원회도 만주에 방사능 벨트를 만드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의 아버지 앨버트 고어 의원은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극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며 핵무기 사용을 부추겼다.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뻔했던 가장 위험한 시기는 1951년 4월 초로 알려져 있다. 4월 6일 오마 브래들리 미 합참의장은 원자폭탄을 핵에너지위원회에서 군으로 이전하라는 허가를 대통령에게 받았고, 트루만 대통령은 핵무기를 중국과 북한 목표물에 투하하라는 명령서에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의 해임에 따른 혼란”이 한반도를 핵무기 위협에서 구해준 것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핵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6년 10월 김일성 당시 주석은 옛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당시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탄두가 남한에 1000개 이상 배치돼 있어 이중 2개만 북한에 떨어뜨려도 북한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며 ‘북핵위기’감을 표명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옛날 얘기’를 굳이 오늘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의 위기가 과거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반세기도 넘게 계속된 ‘북핵위기’의 불행한 귀결이다. 북에 대한 핵위협을 포함한 적대정책을 끝내고 그 반대급부로 북의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퍼주기’일까? 서재정/ 미국 코넬대 교수·정치학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핵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6년 10월 김일성 당시 주석은 옛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당시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탄두가 남한에 1000개 이상 배치돼 있어 이중 2개만 북한에 떨어뜨려도 북한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며 ‘북핵위기’감을 표명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옛날 얘기’를 굳이 오늘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의 위기가 과거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반세기도 넘게 계속된 ‘북핵위기’의 불행한 귀결이다. 북에 대한 핵위협을 포함한 적대정책을 끝내고 그 반대급부로 북의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퍼주기’일까? 서재정/ 미국 코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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