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고 싶은데 딱히 제가 잘할 수 있을 부분이 있을지 망설여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젊은 시절의 환희를 느끼게 한 지침서로서 한겨레를 사랑하기에 역량을 다해 참여하고 하고 싶습니다.”(37살 회사원 독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참여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다 보니 제 모습이 부끄러워 한번 용기를 내어 이렇게 저 또한 사회참여에 발을 내딛고자 합니다.”(38살 교사 독자) “운영난으로 인해 많은 구성원들이 한겨레를 떠나야 했다는 소식에 비통함을 느끼며 크게 힘이 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독자클럽에 가입할 자격이 되는지, 능력은 되는지 스스로 물어봅니다만, 응모하는 자체로 한겨레를 사랑하는 맘을 표시하고자 합니다.”(43살 독자) “창간독자로서, “한겨레신문은 재미있다” “읽고나면 가슴 뿌듯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조그마한 힘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기획 함께 잘 가꾸어 나가면 좋겠습니다.”(44살 독자) 10대 후반의 청소년부터 70대 어르신까지 ‘한겨레 500인 독자 클럽’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한 70대 독자가 보내주신 신청서에는 “정신 건강, 신체 건강 문제없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 활동을 잘 못할 것이란 염려는 하지 말라는 말씀일 겁니다. 한겨레 기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독자클럽을 통해 이루겠다고 밝히시는 독자분도 계십니다. 한겨레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힘입니다. 독자의 참여! 머리로만 생각했지만, 몸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게을렀던 것이지요. 독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겸허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도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다짐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고 합니다. 신청서에서 묻어나는 독자들의 열의에서 그런 ‘필’(느낌)이 강렬하게 꽂힙니다.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에서 한겨레를 꾹꾹 밟아주는 ‘한겨레 보리 밟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다음은 한 독자의 신청서에 담긴 ‘보리 밟기’입니다. 내용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 훌륭한 대화와 논쟁의 주제입니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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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에 대하여 - 한겨레 신문의 교육적 관점은 주로 대안교육에 치중해 있습니다.
대안교육의 이점과 대안교육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한겨레가 교육과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생산성 있는 목소리를 내려면 제도교육의 큰 틀에 대한 전망 역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교육은 말 그대로 ‘대안’이기 때문이죠. 탈학교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도교육의 틀을 어떻게 짜야 교육에 대한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 언론들은 교육현상에 대해 뭉뚱그려 이야기하지, 교육의 현실(교사 양성 시스템의 문제, 교과교육의 지향 문제 등)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을 주로 다루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균형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그랬을 때 더 생산적인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2. 문학에 대하여 - 문학의 전문성과 문학의 대중화 - 문학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
한겨레가 다루는 문학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독자가 한정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문학의 전문성과 연관한 이야기인데, 최재봉 기자가 얼마 전 칼럼을 통해 언급했듯 문학이 대중의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면 문학의 전문성, 이를테면 작가나 작품에 대한 관점 역시 대중성을 더 지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출판과 연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수능 시험에서 현대문학 작품들이 70년대 이후의 작품이 출제되기 시작하면서 고등학생을 위한 문학지침서들이 최근에 대거 새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에 대한 분석도 좋고 이런 경향을 반영한 문학칼럼 연재도 적극 생각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잊혀지기 쉬운 고전문학을 쉬운 현대어로 풀이하거나 재해석해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텍스트로 만들어 출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이 위기라고 하는데 문학의 서사를 그대로 활용한 대중매체물이 많이 나오고 그에 대해 주제론적으로(이를테면 문학과 대중 매체에 나타난 사랑, 가족, 유토피아, 아동 등) 접근하는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흥미로워합니다. 문학을 예술로 보지 않고 생활의 문화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쉬운 칼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문화에 대하여(대중매체)
대중매체에 대한 관점, 대중매체의 수용에 대한 관점은 이미 마르크시즘적 성향의 비판론적 관점이나 보호주의적 관점(아이들을 매체로부터 보호하자는 관점)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자본과 매체의 결합에 대해 비판하고 우리들을 그로부터 보호하자는 관점은 타당하긴 합니다만, 이미 대중매체를 논하는 문화적 관점, 교육적 관점은 그것을 뛰어넘어 대중매체의 제작과 생산, 분석을 교육적으로 시도하고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겨레 애독자로서 가슴 아픈 언급이긴 합니다만 한겨레는 이런 면에서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4. 여성에 대하여 - 아줌마와 직장 여성
일하는 여성의 잡지 <허스토리>를 30대 여성들이 왜 읽지 않았는가. 아줌마와 직장여성은 구분된다는 생각과 관점으로 여성의 문제를 접근했기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여성들이 무엇에 관심있느냐,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느냐 등을 먼저 분석해야 했는데 그것이 미흡했다는 생각이죠. 궁금하시다면 일례로 www.82cook.com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요즘 30~50대 여성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사이트입니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다룬 홈 베이킹, 떡 만들기 열풍에 관한 것은 이 사이트를 잘 들여다 봤다면 한겨레에서 먼저 다룰 수 있었습니다.
어느 선배와의 대화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술자리였던지라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선배 말하길, 앞으로 현대 사회를 이끌 계층은 우리가 꿈꾸던 노동자 농민이 아니라 중산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상류층의 문화를 어느 정도는 경험했으며 하위층들의 문화도 이해할 수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등등. 위, 아래의 교류가 모두 가능한 계층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들이 지닌 계급적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그것만 경계한다면, 사회를 통합하고 화해를 시도할 수 있는 계층은 정말 이들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적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할 지점은 많다는 생각입니다.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위, 아래의 통합을 이끌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는 것. 미래를 주도하고 싶은 한겨레가 지향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닐는지요. 이상, 애독자의 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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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서들을 읽어보며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러면 한겨레는 저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현안을 놓고 <한겨레>와 토론하고, 신문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그 기본일 겁니다. 한겨레는 창간기념일을 맞아 깊고 다른 ‘한겨레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심층·탐사 및 기획 보도를 강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독자클럽 회원들이 참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어떤 회원은 아이디어로, 어떤 회원은 취재로, 나아가 어떤 회원은 직접 기사를 작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독자클럽이 제 궤도에 올라서면, 1주일에 한 번 정도 독자클럽 회원들이 직접 1개 지면을 제작하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습니다. 독자클럽의 전문가와 일반독자들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한겨레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회원들은 관심사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소클럽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회원들의 관심사와 관련한 좋은 글과 정보, 한겨레 관련 소식들을 신속하게 전달해 드릴 것입니다. 작지만 정성을 담아 포상 제도도 운영하려 합니다. 한겨레 500인 독자 클럽은 독자의 편에서 <한겨레>를 감시하는 ‘시민 편집인’(옴부즈맨)과 ‘독자 권익 위원’을 선정하는 권한도 갖습니다.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시민 편집인과 독자 권익 위원을 통해 한겨레를 ‘꾹꾹’ 밟으실 수 있습니다. 많은 진보언론들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여럿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한겨레 구성원들은 ‘우리에겐 아직 할 일이 있으며, 그 일을 하는 데 한겨레는 여전히 엄지손가락’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 과정에 있는 한 사회의 신문”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신문” “세계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신문”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부족합니다. 그 부족함을 독자 여러분이 메워주셨으면 합니다. 독자클럽의 문제의식은 이렇습니다. “독자는 단지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이며 “시민은 지면제작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취지에 동의하는 독자 여러분의 더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한겨레> 편집기획부 조준상 기자 s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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