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1 19:45
수정 : 2005.05.01 19:45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세우는 기치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다. 영호남 지역갈등을 극복하도록 하겠다고도 한다. 개뿔이나, 하긴 뭘 하는가? 정치적 계산만이 앞선다. 지난해에도 나라가 시끄럽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민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뭘 해보겠다고 하더니 오리무중이다. 사실 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며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오래 묵은 영호남 지역갈등이 끊임없이 되새김질되는 것도 오히려 국민통합쇼에서 기인하지 않는가. 곰곰 생각해보니 국민통합하겠다면서 국민들을 더 갈기갈기 찢어놓는 게 문제다.
전국 곳곳에서 지역 주민들이 양분하여 찢어지고 한 동네 사는 주민들 사이는 물론 가족들 사이에도 깊은 적대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도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지 않는다. 지역의 문제이기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역의 문제들이 동일한 사안으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지역의 문제로 한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덕, 고창, 울진, 영광, 부안, 군산, 삼척, 경주, 장흥 등지의 국토를 두더쥐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가 그렇고, 전국 시·구·군 자치단체 단위의 생활쓰레기 처리(장) 문제가 그렇다.
그러고 보니 환경 문제가 걸린 사안들마다 지역민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전국 곳곳에서 횡행한다. 지역민들이 반대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찬성 주민들과 반대 주민들 사이에 급격하게 형성되는 적대적인 감정의 골 문제다. 영호남 지역갈등은 생활공간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과 관련되지만, 핵폐기장이나 생활쓰레기장 문제는 생활공간이 동일한 지역공동체 내에서 주민 적대를 증폭시키기에 더 비극이다. 그리고 그 적대의 골은 평생 치유하지 못하는 감정으로 깊어져 동네길에서나 시장에서 마주칠 때 서로가 껄끄러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세가 더 큰 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쪽의 사람들을 왕따시킨다. 국민통합을 하겠다는 정부나 정치인들, 그리고 그 나팔을 불어대는 언론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다. 아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역민간 적대적인 감정의 골이 깊어지도록 배후조종하거나 덮어버린다.
핵폐기장이나 생활 쓰레기장을 둘러싸고 주민 분열이 극심화되는 데는 원천적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조장하는 바 크다. 환경철학도 없이 돈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여 찬성파들을 만들어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립하도록 한다. 그러기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지역이기적인 바탕이 개입돼 있을지라도 민주적이고 친환경적인 대안을 주장하나, 찬성파들은 뚜렷한 명분이 없이 맹목적이다.
생활 쓰레기장 문제는 특히 환경부가 어리석게도 강행하고 있는 소각위주 정책 때문이다. 짓지 말아야 하고 짓지 않아도 될 소각장을 전국 시·구·군마다 짓게 하고 있으며 그래야 국고보조금을 지원해준다. 소각장이든 매립장이든 어디에 어떻게 짓든 환경부는 시설설치를 승인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주민간 갈등이나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대립은 나 몰라라 한다. 물론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민원을 해소하도록 하지만, 그게 어디 단순히 ‘민원’으로 파악될 문제이며, 불거지지 않도록 봉합한다고 다 해결되는 일인가.
국책사업이든 지방자치단체사업이든 밀어붙여 될 일이 아니다. 반환경 사업들로 인하여 적대적으로 찢어지는 지역민들의 삶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 권력의지의 표현에 불과하고 권력의 크기를 자랑해보이려는 ‘국민통합’을 외칠 시간에 국민들의 실존공간인 지역민들이 무엇으로 찢어지는지에 관심갖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인 지역민들의 분열사태들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지역민들의 반대행위를 님비라 우롱하지 말고 그 안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라. 전국 곳곳에서 산불처럼 찢어지는 지역민들의 삶의 비극을 모른 체 할텐가. 바쁘다? 지역민 너네들 문제다? 당신들이 불붙여놓고도?
고길섶/ <문화과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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