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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2 19:56 수정 : 2005.05.02 19:56

아이들이 돌아간 오후, 교실 바닥엔 여기저기 학용품들이 널려 있다. 떨어진 연필과 지우개를 줍고, 뚜껑을 닫지 않아 말라 버린 풀이며 사인펜, 꾸깃꾸깃 접혀진 색종이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난다.

요즘 학교는 학습준비 자료들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구입한다. 가정에서도 학습자료를 넉넉히 준비하기 때문에 이제 학습준비물이 없어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풍요 속에 못쓰게 된 풀과 사인펜, 주인을 찾지 못한 학용품들이 너무 많다.

말라 버린 풀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이것은 학교에서 마냥 공짜로 주는 풀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낸 세금이라 말한다. 선생님도 월급을 받으면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여러분의 학용품과 책상, 의자들을 산다는 설명을 하면 아이들은 흥미를 갖고 듣는다. 아이들도 세금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기에, 이야기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세금을 잘 내는 어른이 되라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아이들에게 세금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세금에 대한 나의 상식은 사실 낯뜨거운 수준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얼마이고 어떤 과정으로 연말정산이 되는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느냐며 남편에게 핀잔을 받지만, 매달 월급에서 세금을 내고, 자동차세와 주민세 등 고지서에 맞게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그 세금이 나라살림에 쓰이겠지 생각하는 일반 국민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재·보궐 선거를 지켜보면서, 막대한 예산이 드는 선거이고 보면 재·보궐 선거를 안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재선거란 당선인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의 무효 판결 등의 사유로 하는 선거이고, 보궐선거란 당선인이 그 임기 개시 후 사망·사직 등의 사유로 결위 또는 결원된 경우에 실시하는 선거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궐선거는 차치하더라도 재선거의 경우는 중복되는 세금집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선자 개인의 선거범죄만 아니었다면 집행하지 않았을 세금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국회의원 재선거 기간 내내 ‘2006 총선의 교두보 마련, 텃밭 지키기’ 등 의석 확보를 위한 각 정당의 선거운동을 지켜보았다. 왜 우리는 각 정당이 의석 따먹기 식으로 열을 올리는 재선거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자들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를 저지르면서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이고, 자격미달이 되는 게 아닐까? 그자들에게서도, 그자들을 공천한 각 정당들한테서도 그 기만에 대한 사죄의 말을 들은 바는 없는 듯하다. 이들의 잔치, 재선거에 쓰인 우리의 세금은 과연 정당하게 쓰였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어디선가 또 ‘쨍그랑’ 소리가 들린다. 뛰지 말라고, 실내에서 공놀이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심심찮게 깨지는 유리를 보충할 예산은 없기에 깨뜨린 아이들이 변상하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운 꾸지람을 듣고, 스스로 한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막대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재선거의 사유를 제공한 어른들도 부끄러움을 알고,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의경/전남 고흥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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