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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2 20:05 수정 : 2005.05.02 20:05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광활한 땅 중국대륙으로 전국에서 모인 초·중·고교생 30명과 함께 지난 4월20일부터 24일까지 4박5일간 독립기념관의 ‘중국지역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에 참가하였다.

우리는 가장 먼저 상하이시 마당로에 보존되어 있는 임시정부를 둘러보았다. 일제 때 일본의 탄압이 극심해져 우리나라 안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힘들어진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와 충칭, 항저우 등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창설하고 독립운동을 이끌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는 걸 제외하곤 주변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건물, 하지만 우리 일행이 청사 안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우리나라 독립을 확신하듯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태극기가 우리가 임시정부 청사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건물 안을 둘러보며 임시정부 청사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거처를 옮겨가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선열들… 지금은 세월 속에 건물만이 남아 그때의 활동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는 그들의 정신이 모두 남아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임시정부의 대표이자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 선생은 일제에게 잡히면 안 되는 분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눈에 불을 켜고 김구 선생을 잡으려 들었다. 우리가 방문한 자싱(가흥)의 김구 선생 피난처에는 당시 일본군이 들이닥칠 때를 대비해 건물 뒤 호숫가에 두었던 배가 아직도 있었고, 이어 탐방한 하이옌(해염)의 재청별장 피난처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폐병환자 요양소였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이 잘 보존되어 그날의 역사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숨가쁜 피신 생활을 하시면서 독립운동을 이끌고 일제에 저항했던 그의 투지를 나는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훙커우공원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곳이었다. 윤 의사는 일제가 상하이사변 승리 축하식을 거행하는 것을 이용해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에 타격을 가하였다. 그의 거사는 우리 독립운동에 큰 희망으로 다가갔고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 거사가 일어났던 훙커우공원, 그곳에는 현재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비석과 윤 의사를 추모, 전시하는 ‘매원각’이라는 누각이 건립되어 있었다. 매원각에서 나는 윤 의사의 나라사랑에 대한 결의와 업적을 살펴보며 나 또한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몸바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곧바로 대답할 수 없어서 부끄러웠다. 나 자신보다 나라를 더욱 사랑했던 그분들, 자신의 생을 모두 바쳐 오로지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희생하신 우리 독립운동가분들이 있었기에 고단했던 일제 강점기를 이겨내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과 그 속에서 함께한 독립운동가들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중국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의 의미를 소중히 간직하고자 한다.

서봉효/천안북일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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