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3 19:39
수정 : 2005.05.0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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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오지혜 권해효 씨 (사진제공 :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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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내가 진행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파란 눈의 전라도 토박이(?)로 언론에도 번 소개가 됐던 연세세브란스 병원의 인요한 박사가 출연했었다. 그는 국적은 미국이고 외모는 영락없는 서양아저씨였지만 그의 영혼은 대한민국의, 그것도 전라도 촌구석의 ‘징한 한국인’이었다. 할아버지 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를 한 선교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신성인하신 부모님을 보고 자란 그는 특히 나고 자란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바로 옆에서 직접 봐도 참 신기할 정도로 너무나 한국사람의 기질로 똘똘 뭉친 그는 한국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열변을 토했던 부분이 통일 문제였다.
그는 북한에도 여러 번 갔다왔고 지원사업도 많이 진행했는데 ‘퍼주기’라고 표현한 정치인들 보고 딱 한번만이라도 직접 북에 다녀오면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갈 거라면서 형제나 자매가 굶어 죽어가는 걸 도와줘도 ‘퍼주기’라는 말을 쓰겠냐는 말을 하는 그의 눈가엔 놀라웁게도 이슬이 맺혀있었다. 북한의 굶주림의 심각성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이 정도 ‘퍼주기’로는 어림도 없다면서 제발 더 퍼주자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그냥 퍼주자고 하면서 자꾸 ‘조건’을 걸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부터 우리 속담에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엎드려 절하며 도와주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는 따끔한 충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990002%%그와의 방송을 마친 뒤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우리말을 잘 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적극적인 선교사이자 의사라지만 그래도 그는 ‘외’국인이거늘… 나는 이 땅의 문화지식인으로서 통일에 대해 북녘동포의 어려움에 대해 한 게 뭐가 있나 싶으니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헌데 그로부터 며칠 뒤 참 신기하게도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의 손미희 기획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한 빵공장을 세우는데 홍보대사를 해달라는 거다. 내 양심을 그동안 쭉 지켜 봐온 것 같은 전화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내 ‘달란트’를 이용해서 뭔가 ‘할 일’을 알려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정부 지원은 여기저기서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 정부가 뭔가를 해주길 기다리다간 세월 다 갈 것 같아 민간인들이 팔 걷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안 그래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지만 더욱 가슴 뻐근해진 얘긴 일방적인 시혜성 지원이 아니라 남쪽에선 빵을 만들어 낼 기계설비와 원재료를 대고 북쪽에서는 공장대지와 건물 그리고 인력을 대겠다는, 말하자면 ‘함께 하는’ 사업이라는 거였다. 그 기획 자체로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미혜 사업본부장이나 손미희 기획실장의 얘긴 즉슨 밥 때가 됐을 때 옆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질 않으면 그 집 애들 배 곪는 걸 걱정해서 상위에 숟가락 몇 개 더 올리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으로 겁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라는 거다. 더더욱 가슴저린 사업이 아닐 수 없다.
대동강 유역에 꽤 규모가 큰 공장이 진즉에 들어섰고 올해 1월 우여곡절 끝에 기계가 반입됐으며 3월8일 부녀절을 기념으로 공장현판식을 했다. (이 때 가려고 방송 스케줄을 조정해 놨는데 정치적으로 예민한 때여서 인원이 조절되는 바람에 무산이 됐다. 호시탐탐 방북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지난 4월1일을 시작으로 현재 매일 1만개의 빵이 평양 근교의 유치원과 탁아소의 어린이들에게 배급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그냥 밀가루 빵이지만 기금이 조금 더 탄탄해지면 빵 안에 야채와 육류도 들어가는 진짜 영양빵을 만들 계획이다.
정치인의 입심이나 대기업의 돈이 아닌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인 오천원을 내는 개미회원을 모집해서 하는 일이다. 액수는 더디지만 배 곪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한가족’의 마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다. 오지혜/ 배우
후원신청 :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02-3210-1005 www.okbb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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