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4 18:41
수정 : 2005.05.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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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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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기 마니아들에게 신제품 동향을 전하는 미국 기술전문 사이트(블로그)들에서 요즘 한국 동향은 일본과 비슷한 비중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 엠피3 업체가 삼일절에 국내 신문에 낸 ‘애국심 호소성’ 광고가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 업체의 새 휴대형 게임기가 유독 한국에서만 무선 인터넷과 연계돼 팔린다는 소식을 부러운 눈치로 전하기도 한다. 미국 일부 마니아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놀랍다.
사실 우리가 매일매일 느끼지만, 한국은 정보통신 기술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나라 전체적으로 정보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 기껏 사이버 폭력, 사생활 침해 정도가 사회적 고민거리로 부각된다. 하지만 진짜 상처는 언제나 숨어 있게 마련이다. 최근 발간된 책 한권이 살짝 보여준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끔찍하다.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외 5명이 쓴 <정보통신기술과 일다운 일>은 설립한 지 61년 된 국내 대형 자동차회사에서 전사적 생산정보시스템이 노동자의 상황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회사의 관리자는 컴퓨터 앞에서 국내외 모든 공장, 모든 라인에서 생산되는 차량 정보와 작업 상황, 부품 공급업체의 상태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가 아는 정보라고는 ‘에프2’ 따위의 코드로 제공되는 부품 조립 지시뿐이다. 이 책은 “이 시스템이 없던 시절엔 노동자가 차량 종류, 대상 국가, 옵션사항 등을 항상 유념해야 했고, 다른 노동자의 관련 정보도 접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아주 간단한 지시만을 받는다”고 전한다. 이 코드마저도 옆자리 노동자는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조립하는 차 기종조차 알 필요 없는 상황이니, ‘생산물로부터 소외’ 따위를 논하는 건 사치일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의 생산관리 담당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조립공정은 단순하기 때문에 별로 능력개발의 여지가 없다.” 숙련된 기능인력의 상징이던 큰 공장 생산직 노동자의 서글픈 현실이다.
첨단기술이 강요한 이런 퇴보는, 단순노동의 상징으로 취급되는 백화점 판매 여성의 12년 전 현실로 돌아가 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여성학자 박홍주씨는 <노동과 페미니즘>에 실린 글에서 한 백화점 대리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판매사원들에게 하는 교육은 단순합니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노동 환경이 열악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박씨가 체험한 바로는, 판매직엔 능력개발 여지라도 있다. 하룻동안 박씨는 40만원어치를 팔았지만, 4년 된 판촉사원은 210만원어치의 매상을 올렸다. 여성의 ‘보살핌 노동’ 또는 ‘감성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외침이 메아리 없이 반복되는 동안, 생산직 남성 노동자의 하향 평준화가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왔다. 물론 정보기술이 여성 노동자를 비켜갔을 리 만무하다. 인터넷쇼핑몰 고객센터 관리자는, 여성이 대다수인 상담원의 고객 응대 상황을 주시하다가 통화가 3분을 넘으면 감청에 들어간다고 <정보통신기술…>은 전한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의 선택은 신종 ‘기계파괴운동’일까? 물론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다. 오늘의 현실이 이런 건, 기술이 자본의 이윤 극대화만을 위해 개발·적용된 탓이다. 1969년 전투기 엔진을 만들던 영국 루커스항공의 노동자들은 “소리보다 빨리 가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정교함을 가지고 있지만 홀로 사는 노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간단한 난방체계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과학기술 시대의 역설에 맞서, 값싼 의료기기 등 인간에 봉사하는 기계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실패로 끝난 이 시도를 오늘 다시 곱씹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질주하는 자본에 맞서, 기술의 인간화와 민주적 통제를 이루겠다는 건 너무 허황한 생각일까? 그렇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10년, 20년 뒤 이 땅의 노동자가 될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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