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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5 20:30 수정 : 2005.05.05 20:30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갔다가 학생들의 반대 시위로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제목을 보고 나는 고대 학생들이 십몇 년 전처럼 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졌나했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보니 학생들의 시위는 비교적 점잖았던 것 같다. 계란은 고사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 때처럼 학교 진입을 막지조차 못했다. 아무튼 약식이긴 하지만 학위는 무사히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기사를 읽고 나서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고대가 100주년 기념관을 짓는데 이 회장이 400억원을 쾌척했다. 고맙지 않은가? 그 고마움의 표시로 명예박사학위를 하나 주자고 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그것에 고대 학생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속문제와 기형적인 지배구조 문제도 문제려니와 21세기에조차 지나가던 개도 웃을 무노조주의를 고집하며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이 삼성이니 말이다. 아무튼 우여곡절이 있긴 했어도 이 회장은 명예박사학위를 받아 이름뿐이기 해도 명예를 챙겼고, 고대 당국은 돈을 챙겼고, 학생은 고대의 정신을 살렸으니 이럭저럭 모두 윈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아무 일도 아니군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총장 이하 고대 보직 교수들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고, 고대 총장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고대가 삼성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사과를 할 만큼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대가 지난 100년의 역사를 통해서 어떤 일에 대해서 이렇게 신속히 그리고 처절하게 용서를 구한 일이 있었던가? 설령 삼성이 이번 일로 고대 당국을 몹시 괘씸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대학이라는 제도는 그 성질상 어떤 다른 권력과 권위에 대해 굴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대학이 단지 비판적 지성을 자기 정체성으로 해서만이 아니라 대학이 특정 기업 같은 것에 중요한 의존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고대생들을 난타하는 것은 물론 연이어지는 기사가 전하는 인터넷의 분위기, 예컨대 누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데 학생들이 그렇게 방자하게 구는가, 이제 고대 출신은 삼성에서 이사 하기는 글렀다는 식의 글들을 보자 조금 느낌이 달라졌다. 방대한 사회경제적 힘을 가진 삼성에 척을 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고대 인맥 전체에 흐르고 그것이 고대 당국에 피드백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런 게 삼성의 힘일 수 있겠다 싶었다. 거기에 더해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나서서 “기업가 정신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꾸짖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자 청와대조차 삼성에 아첨해야 할 만큼 삼성의 힘이 강한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사태의 전개를 모두 보고나니 고대 당국의 행동이 진정 두려움에서 우러난 행위였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정으로 징후적인 사건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사학 고대가 두려워 할 존재라면 삼성은 우리 사회 성원 모두에게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 삼성은 모든 판돈을 챙겼다. 이 회장은 이번 사태를 “젊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이해한다”는 소회를 밝힘으로써 한껏 자신의 인자함(?)을 과시했고, 삼성은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아주 우아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의 위상을 사뿐히 끌어올렸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도 이번 일은 경고하는 바가 있거니와, 삼성의 비대한 권력과 막대한 생산력을 우리 사회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두기가 극히 어려워진 것은 물론 자칫 우리 사회가 삼성의 통제 아래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심화를 지향한다면 우리는 이제 삼성을 비판적 사유와 사회운동의 대상으로 삼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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