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6 18:28
수정 : 2005.05.06 18:28
오늘 고등학생들이 학교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 행사를 한다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참가 학생들을 징계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각 학교에서는 아이들 참여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양이다.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는 쪽에서는 이 행사를 내신등급 상대평가제 반대와 연계해서 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행사는 학생들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입시교육 체제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밝혔다. 사실 여러 언론은 이미 이달 초순부터 ‘고1 내신제 비상’을 크게 보도하면서 학교 간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2008년 대학입시 제도를 은근히 비판해 왔으며, 고교입시 부활 혹은 대학의 본고사 부활의 불가피성을 슬쩍 강조하고 있다.
고 1학년 교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어떤 아이들은 내신성적 잘 받기 위해 거의 매일 새벽까지 자발적으로 공부한다고 하고, 학교는 삭막하기 그지없으며 어머니들은 아이들 성적 안나올까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지금 학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그 전부터 계속 나오던 소리이겠거니 할지 모르지만, 지금 학교상황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촛불 추모생사는 집단저항 이라기보다는 이 입시의 전쟁터에서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비명’이라고 생각된다. 교육당국과 모든 교육 관계자들은 45년 전 저 4.19 데모 당시 어른들이 학생들의 정당한 시위참가를 막는데 급급했듯이 이번에도 사태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참가자를 단속해서 추모행사가 무산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1 내신문제는 단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잘못이나 입시 제도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대학 서열화를 엘리트 양성을 위한 바람직하고 불가피한 경쟁체제라고 호도하는 언론, 이른바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기업과 사회, 그리고 준재를 범재로 만드는 현재의 대학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데 노력하기 보다는 “좋은 학생 뽑겠다는 것이 왜 문제냐”는 문제의식을 갖는 ‘국립’ 대학이 있는 나라에서 학부모와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현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이야 말로 지금까지 학력, 학벌 만능주의를 은근히 조장해 온 점에서 사실 오늘의 사태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 중의 하나다.
그 동안 보아왔듯이 입시제도 변경은 하나를 막으면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 잡기 게임에 불과하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는가가 평생의 운명을 거의 좌우하는 나라에서 고교입시나 본고사가 아닌 그 할아버지가 와도 문제는 더욱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상 국민 거의 모두가 피해자이자, 최대의 국가적 낭비구조이자, 아이들을 노예로 만드는 이 망할 한국 교육을 누가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필자는 우선 수직적 대학 서열체제의 극복, 국립대 평준화 만이 초중고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대학을 대학답게 하고, 아이들을 제대로 자라게 할 수 있는 일차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그전부터 강조해 왔지만 사람들은 대학 경쟁력, 엘리트 교육 운운하면서 그러한 대안을 현실성 없다고 묵살해 왔다. 과연 그런가? 이 치열한 입시 전쟁의 최종 승리자가 국제사회에 나가서는 열등생이 되는 것을 보고서도 대학 경쟁력을 주장할 셈인가? 이제 참다못한 아이들이 뛰어나오고 있다. 이 전쟁터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죽고, 다치기 전에 교육부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들은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무엇이 자기 밥그릇, 자기 자식, 자기 학교가 아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길인가를.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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