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8 17:03
수정 : 2005.05.08 17:03
좋은 사회가 되려면, 꼭 지켜야 할 게 있고, 지키면 좋은 게 있다. 교통질서 등이 꼭 지켜야 할 거라면,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지 않기 등은 지키면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이동통신 이용자 위치정보 보호는 어느 쪽에 둬야 할까. 지난 1월 제정된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이하 위치정보법)은 개인 위치정보 보호를 꼭 지켜야 할 것으로 쳤다. 하지만 최근 예고된 위치정보법 시행령안을 보면, 지키면 좋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는 “개인 위치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라서 엄격하게 보호돼야 한다”며, 별도로 위치정보법까지 만들었다. 법 이름을 처음에는 ‘위치정보 이용 및 보호 등에 관한 법’으로 했다가 “보호 쪽에 무게를 두겠다”며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으로 바꾸는 부산까지 떨었다.
하지만 시행령은 정부 의지를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동통신 이용자들의 위치정보를 수집해 이용하는 업체들이 위치정보 보호 의무를 게을리하고도 책임을 피할 수 있는 ‘틈’이 너무 많다.
기업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법인 이름으로 가입한 뒤 실제 사용자를 알려주지 않으면 계약자를 사용자로 간주하고, 사용자가 요청하면 위치정보를 수집해 이용한 사실을 전자우편 등 다른 수단으로 통보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 게 대표적이다. 기업이 이를 악용하면, 법인 이름으로 이동통신을 개통해 직원에게 사용하게 하면서 위치를 추적하는 게 가능하다.
위치정보법이 “이동통신 단말기의 위치정보를 수집해 이용할 때는 실제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위치정보 이용 때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 위치정보 이용 사실을 사용자 단말기로 통보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시행령이 위치정보 보호 수준을 많이 낮췄다고 볼 수 있다.
위치정보법이 지금의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했을 때, 이동통신 업체들이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투덜댔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시민·사회 단체들의 눈을 의식해 법은 엄격하게 만들어 놓고, 시행령을 통해 업체 쪽 주장을 들어줬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어 보인다.
본인 동의를 받지 않고 위치정보를 수집해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업체를 과징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 것도, 정부의 개인 위치정보 보호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개인 위치정보란 이용자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해군이 운용하는 위성을 이용해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반지름 10m 이내의 오차범위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악용당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시행령은 위치정보를 부당하게 수집해 이용한 업체를, 단말기 보조금을 몰래 지급했거나 요금을 과다하게 청구하다 적발된 업체처럼 과징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업체 쪽에서 보면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위치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를 하고도 과징금 좀 내면 그만이다.
더욱이 정부는 과징금으로 처벌을 대신할 수 있게 한 배경을 “이동통신 업체들에게 위치정보 사업 정지 처분을 내리면, 이들에게서 위치정보를 넘겨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치정보 기반 사업자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해, 이동통신 업체들로 하여금 “우리가 위치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면, 위치정보 기반 서비스가 사실상 힘들어지는데, 정부인들 어쩌겠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다.
국민이 위치정보의 수집 및 이용과 관련해 불신을 가지면, 위치정보 기반산업 육성 정책과 서비스 활성화 두루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법령부터 엄격하게 만들어, 감히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위치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다.
김재섭 경제부/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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