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5.08 17:31 수정 : 2005.05.08 17:31

계절의 여왕 오월은 가정의 달이란다. 어쩌다 이렇게 한 달에 몰아 사랑과 감사를 다 바치게 되어있는지, 연이어 닥치는 기념일에 포위된 느낌을 받기까지 한다. 방송에서는 가족을 주제로 한 특집프로가 이어지고, 신문에 끼워져 들어온 전단지에는 어린이와 부모와 스승에게 전달하기에 적절한 상품들이 조목조목 구색을 맞추어 들어차 있다. 메마른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족드라마에 눈을 빼앗긴 채로 구멍 난 가계부를 걱정하다 보면, 오월은 아주 쉽게 가버린다. 감사도 사랑도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어린이날 나들이에 놀이공원이 좋을까 박물관이 나을까, 어버이날 선물로 건강식품이 맞춤할까 현금이 산뜻할까 고민하는 만큼이라도,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하고 염려하는 것일까? 그토록 단순하고 강렬하게 믿고자 하는 ‘서로 돕고,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정말로 그것만이 이 환란과 소외의 시대에 우리가 유일하게 몸을 싣고 의지할 쪽배일까?

여전히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의 위기’라든가 ‘가족 해체’ ‘가족 붕괴’ 등의 말이 역설적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가족을 지키고 유지해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 누구도 가족 따위는 거추장스런 짐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속하지 말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등골이 빠져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힘겹다고 말하는 아버지, 가족들을 챙기고 거두느라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끔찍하다고 말하는 어머니,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귀여운 인형 노릇을 하는 일이 지겹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꽁꽁 감춰둔 검은 욕망들이 어느덧 비집고 나와 세상은 이미 힘겨운 아버지와 끔찍한 어머니와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열다섯 살의 여중생은 상습적인 폭력에 못 이겨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 어머니는 딸을 유흥주점에 접대부로 팔고, 빚에 쫓긴 부모는 저항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살해하고 동반자살한다. 굳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 사고가 아니더라도, 가족 때문에 고통 받고 좌절하고 상처 입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오로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보살피고 도와야 한다는 가족 판타지는 실상 사회가 개인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방기하면서부터 비롯된다.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범죄를 묵인하고, 미흡한 복지제도를 ‘효’로 포장된 개인의 희생으로 때우려 한다. 미성년의 아이들은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야 마땅하고 장기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환자들은 전문가와 복지시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등한시한다는 비난과 질시가 두려워 단란한 비둘기 집을 흉내 내는 동안, 우리의 가족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중누각이 되어간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숱한 기대와 환상을 퍼붓는다. 친절하게 굴거나 예의를 갖추어 대하지 않아도 가족이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타인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무지와 무례 속에서 우리의 가족들은 남몰래 아프다.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분노로 바뀌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가장 깊이 미워하게 된다. 차라리 그들이 타인이었다면 훨씬 쉽게 염려와 동정의 마음이 솟구치지 않았을는지.

오늘도 수많은 가족들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한편 끝없이 새로운 가족이 ‘창조’된다. 사랑은 ‘그러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진언이 새삼스럽다. 가족에게 부과된 너무 많은 책무와 판타지를 걷어내고 나면, 그곳에 오롯이 남는 것은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뿐이다. 절체절명의 제도와 명분이기 이전에 박애와 공생의 둥지에서 만나는 가족이란, 결국 못난 나와 꼭 닮아 더욱 애틋한 타인에 다름 아니므로.

김별아/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