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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의 자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한겨레를 보는 문제적 시선은 두 종류일세. 하나는 한겨레가 변해서 문제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너무 안 변해 문제라는 것. 한겨레가 초발심을 잃고 특정 정파나 정권을 싸고돌고 광고 협찬 잘 주는 대기업 눈치나 보고 있다고. 그래서 한겨레다운 매운 맛도 뭣도 사라졌다고. 그런가 하면 과거의 향수에 젖어서 변화의 맥을 읽지 못하기는 ‘수구 꼴통’과 다를 게 뭐 있냐는 것이지. 생각해 보게. 88년 이후 한국사회의 격동기에 한겨레가 한 일들을 말이야. 그런데 정작 왜 한겨레가 위기인 거지? 왜 한겨레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이지? 지금 한겨레는 외견상 행군의 진로를 열기 위해 정찰과 진지구축에 안간힘을 다하다 정작 자신은 흙 묻은 삽을 든 채 뒤처져 버린 병사들과 같은 모습이야. 그 길을 따라 밀려오는 새로운 대열들은 그 병사들을 보고 ‘쟤들은 왜 몰골이 저렇게 엉망이야?’라고 말하고, 앞서 간 사람들은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뒤돌아보며 말하지. 쟤들은 왜 아직 못 따라오고 있는 거야? 주주·독자와 어깨 겯고 나갈것 문제는 이런 거였어.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민주화 시기에 한겨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지. 하지만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뤄진 토대 위에서 과거의 투쟁으로 중무장한 한겨레는 불어닥친 변화의 속도를 감당해 내지 못했던 거야. 변화를 제때에 받아들이기엔 무기도 안목도 모두 부족했어. 무엇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하기엔 너무 가난해졌고 너무 많이 지쳐 있었지. 하지만 그것으로 한겨레의 역사적 소명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간판을 내리라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 않겠나? 어쩌면 한겨레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일 거야. 역설적이게도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받으며 계몽의 선두에서 내려오길 재촉받는 바로 이 민주와 자유의 시대가 말이야. 스물아홉살의 자네! 지금 가판대에 놓인 한겨레를 그대와 함께 읽고 있다고 상상해 보네. 비록 그때나 지금이나 빛바랜 용지와 거친 인쇄 속에 자학에 가까운 비판의 쓴소리를 스스로 삼키고 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6만 주주, 50만 창간독자들과 함께한 뜨거운 연대와 위로, 양심과 용기의 역사를 읽으려 하네. ‘민중의 간절한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 내가 가진 수단이란 게 열정뿐이어서 부끄럽다’던 자네는 여전히 뜨거운 청년으로 거기를 지켜주게. 이제 우리는 삽날의 묵은 흙을 털어내고 처음처럼 내일의 길을 만들어 가려 하네. 이인우 기자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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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한겨레>는 5월15일 창간 17돌을 맞습니다. ‘곧 망할 신문’이란 저주를 들으며 벌써 1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진보언론계 일각에서 <한겨레>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간이 지났습니다.
되돌아봅니다. 국민이 만들어준 신문임에도 국민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늘 ‘진보언론’을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겨레> 스스로가 강해져왔는지 의문입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한겨레>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관한 각계 인사 열 분의 제안을 5월3일부터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를 사랑하는, 아니 한겨레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간직한 모든 네티즌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야!한겨레’에 대한 댓글도 좋고, 네티즌 여러분의 독자적인 비판의 글도 좋습니다. 보도태도에 대한 비판과 제언을 통해 한겨레를 꾹꾹 밟아주시기 바랍니다. 네티즌 여러분 글의 하한선은 원고지 5매입니다. 상한선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쓴소리를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보리밟기’로 아로 새기겠습니다. 겸허히 새겨들으며 ‘제2창간’의 각오를 다지겠습니다.
네티즌 참여 | http://bbs3.hani.co.kr/Board/hankr/list.asp?Stable=hankr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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