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9 20:10
수정 : 2005.05.09 20:10
농촌에는 빈집들이 많다. 마을 한가운데에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빈집들이 한두 채가 아니다. 얼마 전 인근 도시에 살며 우리 마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빈집 하나를 농막으로 쓰려고 수리한 일이 있었다. 낡고 삭아 뜯어진 벽지도 다시 바르고, 무너져 내린 흙벽은 마을 어른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황토와 볏짚을 섞어 치대서 처발랐지만 꺼진 구들장과 아궁이, 망가진 문 창살은 그들의 힘으로는 어림없었다. 결국 지켜보시던 마을 어른들이 직접 나서서 구들장을 뜯어내어 다시 맞추고, 아궁이와 굴뚝도 새로 만들고 망가진 문 창살도 대나무 살을 켜서 엮어 주셨다. 그러고 나니 도깨비가 나올 것 같던 집이 신접살림을 차려도 될 만큼 말짱하고 깨끗해졌다.
한번은 먼저 귀농한 부부의 집을 찾았더니 볏짚으로 크고 작은 바구니들과 생활에 필요한 여러 소품을 만들어 놨는데 종자를 넣어둔 바구니는 깨알보다 작은 좁쌀까지 담을 수 있을 만큼 촘촘하고 야무진 게 플라스틱 바구니보다 훨씬 튼튼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돈 주고 사지 않고 자연 소재를 이용해 만든, 요즘 말로 ‘친환경제품’이라 맘에 들었다.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배워둔 것이란다.
도낏자루로 쓰는 나무는 가볍고 튼튼한 박달나무나 물푸레나무가 좋고, 닭죽을 끓일 때 여러 가지 약재가 없을 땐 손가락만한 뽕나무 가지 몇 개만 넣어도 닭 특유의 냄새는 없고 은은한 한약재 냄새가 나서 먹기 좋다는 것 등등, 외딴섬에 사는 우리 부부가 10분 거리의 동네 형님 댁에 자주 가는 까닭은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쌩뚱맞은 생각이지만 40여년을 살고서도 가장 기본적인 먹고, 입고, 살 집을 지을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 노인들은 이런 일들을 다 할 수 있다. 산에 있는 온갖 나물들의 성질을 알아 독초와 먹을 수 있는 나물을 구별하고, 나무들의 쓰임새도 알고, 농사짓고 가축을 길러 먹을거리를 생산한다. 시멘트와 철재가 없어도 흙과 돌과 나무로 집을 지을 줄 알고, 볏짚이나 칡, 싸리나무 등을 써서 짚신이며 망태기, 멍석 등 온갖 살림살이를 만들어 쓸 수 있다. 목화와 삼을 재배하여 천을 만들고, 염색하여 옷을 지어 입을 줄도 안다. 석유나 석탄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고, 공해도 일으키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노인들은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이런 능력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살아가면서 익혔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떠드는 이슈 중의 하나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 사회’다. 젊은 경제활동 인구는 줄고 이들이 부양해야 할 늙은이들은 많아지는 사회가 오고 있다고 걱정들이다.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단지 부양해야 할 대상에 불과한 걸까?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가 노인들에게 배워 아이들에게 전수해야 할, 책에도 나오지 않는 무수히 많은 삶의 지혜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은 채 짐으로만 여기고 있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주영미/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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