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9 20:18
수정 : 2005.05.09 20:18
철도청 유전사업 의혹의 수사가 한창이다. 사건의 실체는 곧 밝혀질 것이다. 이와 별개로 국민들은 4·30 재보궐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여당을 심판했다. 표심은 이런 경고일 터이다. “이 사건에서 집권층이 권력에 맛들인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며, 도덕적 해이의 강한 예후가 보인다.” 권력형 비리가 실제 드러난다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중대한 문제요, 아니라 해도 절대 대수롭게 넘길 수 없다. 이 병증을 근치하지 않으면 정권의 몰락을 넘어 나라가 병들기 때문이다.
이런 때 1999년 5월 보도된 옷로비 사건은 교훈적이다. 이 사건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이 검찰 수사를 받던 남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김태정 검찰총장의 부인에게 고급 밍크코트를 선물하려 한 건이다. 고관의 부인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재벌 부인들과 고급의상실에 몰려다닌 행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2월 이를 내사하고도 문제없다고 결론내렸으며, 5월 전면 개각 때 김 총장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부도덕을 벌하기는커녕 포상을 한 꼴이다.
외환위기와 경제난으로 고통받던 국민들의 분노는 꼭뒤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언론이 별것 아닌 사건을 키우며 마녀사냥을 한다며 여론을 무시했다. 전면 개각 때 한 신문이 개각 내용을 특종보도했는데, 이를 낙종한 신문이 보복성 음해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먹었다고 없는 사실을 보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정권 핵심은 무리의식으로 똘똘 뭉쳐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로 무장했다. 이어 3·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엄청나게 돈을 뿌린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자 이것까지 싸잡아 음해로 치부하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렸다. 돈선거는 끝내 수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런 교만으로 당시 정권은 나라의 기강을 다잡을 계기를 놓쳤다. 이때 권력층이 스스로 각성하고, 권력 주변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부나방’들을 잡도리했다면 나중 대통령 측근과 아들들이 구속되는 불행은 막을 수도 있었다. 디제이 정권은 이후에도 위기 때마다 관성처럼 민심에 귀를 막았으며, 이로 인해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훗날 이희호씨는 아들 사건 등 여러 불미스런 일이 잇따르자 주변에 “지혜롭게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는 〈잠언〉의 가르침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씨의 말은 인간의 ‘짧은’ 지혜에 대한 불신과 안타까움을 토로한 역설이라고 할 것이다.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말마따나 권력은 도취적이다. 옷로비는 집권 1년 만의 일이다. 문민정부에서도 청와대 총무수석이 지역민방 허가를 돕고 40억원을 받아 돈맛을 들인 것이 집권 1년반이 지나던 때였다. 일개 부속실장이 3년 만에 27억6천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한 실세가 “권력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며 환호작약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과연 지금은 다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각종 비리가 굴비두름처럼 엮여 나온다. 민주화 이후에도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는 다를 것”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공허한 맹세를 하느니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비리를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실제적이다.
한비자의 통찰과 처방은 오늘 매우 유용하다. 그는 사람이란 독립된 이익개체로 항상 자기자신을 위해 계산한다고 갈파했다. 때문에 “군신 사이 이익은 서로 다르며, 신하의 이익이 서면 군주의 이익은 소멸한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신하의 탈선을 막으려면 다양한 의견을 들어 진실과 거짓을 가리고, 엄한 법도를 세우며, 위법자가 생기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잔인하달 정도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온정주의의 군주는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오늘이라고 달라야 할 까닭이 없다.
참여정부는 높은 도덕성을 기반으로 집권했다. 도덕성이야말로 정권의 존재 이유라고 할 정도다. 이것 없이는 경제도, 북핵 문제도, 균형자도 동력을 얻기 어렵다. 유전개발 의혹 사건의 시대적 의미는 끊임없는 자정노력이야말로 이 정권의 생명줄임을 재확인해준 데 있다.
조상기 논설위원
t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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