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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19:41 수정 : 2005.05.10 19:41

엊그제 아내가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들과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아빠 저, 다른 학교로 전학 좀 보내 주세요” 그러지 않는가.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저 요즘 학교에 가고 싶지도 않고,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동안 혼자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아빠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서 아들은 내가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말을 털어놓았다. 같은 반 학생 중 1짱, 그러니까 반에서 힘이 제일 센 아이와 그 다음 2짱이 있는데, 그 두 아이는 늘 같은 반 아이들을 때리거나 괴롭힌다는 것이었고, 얼마 전에는 한 아이가 그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난 뒤부터는 두 아이의 횡포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그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수없이 접하던 그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내 자식의 입을 통해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문제의 두 아이 중 1짱이라는 아이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편이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늘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2짱이라는 아이는 편부모 가정이었는데 최근 그 아이와 아들이 시비가 붙었을 때 아들녀석이 그 아이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제일 비겁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 상대의 약점을 잡는 사람이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왜 했어! 내일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 그리고 1짱이라는 아이하고는 좀 더 구체적으로 탁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보고!”

다음날 오후, 사무실 책상 위에 휴대전화가 요동을 쳤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매우 흥분된 채 아들녀석의 눈언저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퇴근시간 집으로 오는 도중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들 문제 잘 해결됐어요.” “어떻게~?”


아내는 아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거의 이성을 잃었고, 카메라로 아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놓은 뒤 진단서를 발급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 문제를 너무 확대시켜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문제의 아이들을 한번 만나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과 문제의 두 아이를 데리고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음식을 시켜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배고픈데 얼른 먹고 늦지 않게 학원 가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저희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아이들이 아들과 함께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때 두 아이가 머뭇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고, 아내는 잘못을 알고 있는 듯해서 재빨리 손에 차비를 쥐여 주며 “어서들 학원 가야지! 서둘러라 시간 늦겠다” 하고 재촉하여 아이들을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들녀석은 이미 학원에서 돌아와 있었다. 1짱과는 점심시간에 만나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고, 2짱에게는 어제의 일을 사과하려고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주먹이 날아와 눈밑을 맞았으나 어제의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로 그냥 맞아 주었다고 했다. “그래 잘했다. 이젠 전학 안 가도 되겠네?” 녀석은 멋쩍은 듯 씩 웃었다. 학교폭력!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고민과 문제를 함께 풀어 가고 사랑과 온정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양/서울 영등포구 신길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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