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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20:08 수정 : 2005.05.10 20:08

얼마 전 총경급 경찰간부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일수록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접견하러 갔더니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한다. 게다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조서는 볼 수도 없다. 이럴 경우 변호인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 초기에 적절한 조언과 변론을 할 수 없게 된다. 구속 기간도 오래 갈 수밖에 없다. 베테랑 수사통 경찰관이 그러니 일반인의 경우는 어떠할까.

요즘 검찰과 경찰간 수사권 조정 논의가 뜨겁다. 양쪽 다 같이 국민의 인권 보호를 앞장세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인권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개선되지 않는 수사 관행이 있다. 더욱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까지 내렸음에도…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사를 앞둔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조서와 고소장의 열람 및 등사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사람이 체포, 구속되었을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구하게 된다. 이때 변호인은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위해 피의자를 접견하게 된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가족 등의 진술만 듣고 법정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폭행, 교통사고 등 단순한 사건의 경우는 모르되, 복잡한 사건의 경우는 일회적인 접견만으로는 사건의 실체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데다,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어 사건의 실체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은 아예 사건의 내용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변호를 맡은 변호인으로서는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이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구속자가 무슨 혐의로 고소인의 공격을 받고 있는지, 피구속자가 수사기관에서 무엇이라고 진술하였는지, 어느 점에서 수사기관 등이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았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위 서류들의 열람 및 등사는 변호인에게 반드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핵심적 권리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변호인의 피구속자를 조력할 권리 및 알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이다.

그런데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고소장이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시켜도 이로 인해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위험을 가져올 우려라든지 또는 사생활 침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 또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사유가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관행적으로 열람 및 등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무기 대등의 원칙이나 당사자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뿐더러 변호인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어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 광주지방검찰청은 이에 대한 개선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사건 수가 훨씬 더 많은 경찰에서는 상부의 지시가 없는 한 응할 수 없다 하고 경찰청은 대한변협의 공문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고 억울하게 체포, 구금될 수 있다. 그런데 나를 도와줄 변호인이 사건의 핵심도 파악하지 못한 채 법정에서 엉뚱한 변론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사법개혁과 수사권조정 논의의 목표는 결국 국민의 인권보호와 양질의 사법서비스 제공일 것이다. 그렇다면 거창한 논의보다 우선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위헌결정이 난 사안부터 개선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라도 수사기관은 체포, 구속된 피의자의 변호인에게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해주기를 바란다.

이정희/ 변호사·대한변협 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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