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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20:09 수정 : 2005.05.10 20:09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외교전쟁’을 보면서 내가 관심있게 관찰했던 부분은 한국 시민사회의 움직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격앙된 여론의 홍수 속에서 시민사회가 그나마 조금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긴 하나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번 토로했듯이 나는 이성의 힘을 존중하는 계몽주의를 소박하게 실천하자는 뜻에서 진보를 이야기한다. 잘 안다, 계몽주의가 일방적인 보편성을 조작해 내면서 비서구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지를.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도 진보의 뿌리는 어차피 계몽주의에서 나왔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한일 관계를 이성적으로 보는 과제는 시민사회 진영에게 일종의 시금석과 같은 도전이다.

우선, 한일 간의 모든 현안을 하나의 패키지로 취급하는 것은 이성적인 자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역사 인식과 영토 분쟁이 같은 차원의 문제인가? 같은 시기에 같은 당사자가 얽힌 문제들이라 해서 성격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전자는 정의와 진실의 문제이고 어떻게 단죄하느냐의 문제지만, 솔직히 후자는 국익이 걸린 이슈이고 어떻게 ‘게임’에 잘 대처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뜻에서 나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것을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해 거대한 ‘음모론’의 연장선에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런 점에서 사안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성적인 온도조절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패키지 식의 현실 인식과 함께 나타나는 패키지 식의 대응 방식도 우려스럽다. 냉정하게 대처하자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대통령부터 시민사회까지 한결같이 과민반응이었다. 특히 영토분쟁은 그 성격상 장기전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토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점유의 현실이지 어디 처음 들어보는 시골 지자체의 결정이 아니다. 그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독도 문제 초기에 어느 대학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일본학생을 돌려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게 도대체 교육자로서 마땅히 할 짓인가? 국가간 관계를 떠나 학교는 끝까지 학생을 보호했어야 옳지 않은가? 이런 ‘작은’ 문제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한 인물이나 단체가 있었던가?

또한 이러한 여론의 분위기 아래서 질식당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똘레랑스를 그렇게 외치던 시민사회가 가수 조아무개에게 가했던 난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의 역사의식이 혐오스런 수준이고 그의 분별력이 바보의 경지라 하더라도 개인적인 발언을 이유로 연예인을 생계 터전에서 몰아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보기 싫으면 시청률을 떨어뜨려 제 발로 방송을 떠나게 하면 될 일이었다. 흉악 범죄자라도 고문하면 안 되듯이 저질 발언자라도 말할 권리를 존중해 주자는 것이 인권의 초보적인 상식이다. 이 문제는 사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교과서적인 사례여서 그리 복잡한 논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관한 한 시민사회는 인권침해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누리꾼들은 80 대 20의 비율로 조모의 방송 퇴출에 찬성했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수치다. 우리 사회의 단지 20 퍼센트만이 정상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볼 줄 알았던 것이다. 이는 촛불집회, 대선, 탄핵, 총선, 파병 등에서 표출되었던 ‘진보’의 수치보다 훨씬 낮은 결과다. 우리의 진보적 기반이 사실은 모래성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든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시민사회는 시비를 가리고, 정도를 구분하며, 우리 스스로의 억압성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아는 이성적인 목소리의 전파자가 되어야 한다. 여론에 영합하는 단선적인 연대가 아니라 프레드 할리데이가 말하는 ‘복합적인 연대’를 할 줄 아느냐가 우리 시민사회의 발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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