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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3 17:41 수정 : 2005.05.13 17:41

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러시아 유전개발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몸통’이 정부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꽤 많은 고위 관리들이 ‘석유의 덫’에 걸려들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청계천 복원사업 부정과 비교해서 관련자들이 크게 잘못한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이 이 사업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짓을 하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유치장에서 너무 억울하다고 분통해할지 모른다. 섣불리 일을 추진한 탓에 계약금의 일부를 떼이게 되었을 뿐 돈을 먹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에너지 자주개발을 외치는 국가를 위한다고 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만일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고 성공했다면 이 들에게 꽤 큰 칭찬과 포상이 내려졌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몸통’이 정부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정부 고위관리들의 연루를 들어 정부가 ‘몸통’이라고 말하지만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 우리 사회가 ‘석유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가 석유·가스의 국외 자주개발과 수소경제를 선언하고 국민들은 그러면 에너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 분위기 속에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사건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렇다고 근원적인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석유의 덫’에 걸려 있는 한 유가가 올라가면 자주개발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고, 경쟁적으로 국외유전 자주개발을 추진하는 가운데 비슷한 사건이 계속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의 덫’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더욱 거세게 옥죌 것이다.

올해 들어서 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석유생산량이 곧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회의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유가에 대한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는 투자회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골드만 삭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05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4월 말 퀀텀펀드에서는 1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며칠 전에 끝난 중남미·아랍 정상회담에서는 세계 5위의 석유 생산국인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석유 생산은 이미 정점에 도달했지만 수요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석유 위기가 곧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하원에서는 공화당 소속 의원이 석유 정점에 대해서 3월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나 특별강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 발표된 미국 에너지부의 위탁으로 수행된 연구에서도 석유 위기가 임박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했다. 연구에서 그 근거로 제시된 것은 수십년 간 유전 탐사기술은 크게 발달했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여 아무리 활발하게 유정을 뚫고 석유를 탐사해도 발견되는 유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분석가들이 새로운 거대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에 대해서 비관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가장 낙관적인 분석가도 25년 안에는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한다고 전망한다는 것이다. 연구에서 제시하는 대비책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석유 소비를 줄여감으로써 ‘석유의 덫’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주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릴 유럽 석유정점회의에서는 석유 생산 감소시대에 닥칠 전지구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교토의정서와 같은 국제협약에 대해 논의한다. 논의의 핵심은 이산화탄소 방출을 전지구적으로 관리하듯이 석유 생산과 소비도 관리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제안될 협약의 내용은 석유 수입국은 연간 2~3%로 예상되는 감소분만큼 석유 수입을 줄여나가고, 석유 생산국은 감소분만큼 덜 생산하라는 것이다. 전세계의 모든 석유 사용 국가가 여기에 동의해야만 고유가와 석유 부족을 이용한 부당이득을 방지하고, 저개발국의 석유 수입을 보장하고, 석유의 대안을 진작할 수 있다는 것이 제안자들의 생각이다. 몇 년 새 이런 형태의 국제협약까지 논의되는 상황까지 왔다. 이런 상황인데 ‘석유의 덫’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석유 자주개발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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