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5.16 18:39 수정 : 2005.05.16 18:39

‘9·11’과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외교사전에서 테러와 독재는 동의어다. 미국의 대테러전도 반미 독재정권의 교체, 즉 ‘레짐 체인지’가 기본전략이다. 북핵 문제의 본질도 이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의 일차 변수는 관련 강대국들의 동향이지만 외교와 정치의 경계가 희미한 미국의 특성상 미국 국내정치의 동향에서도 미국 대북 전략의 추세는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의 집권 공화당은 ‘민주+공화당’이다. 뉴딜 이후부터 민주당이 독점해 왔던 진보적 정책과 도덕정치까지 표방한 기이한 보수, 즉 ‘진보적 보수’가 공화당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지출을 급격히 늘리면서 교육과 보건 프로그램을 거창하게 추진하는 부시 행정부의 행보는 40년 전 존슨 민주당 행정부의 사회개혁 프로그램인 ‘위대한 사회’의 후속판이고 동성애 결혼을 아예 헌법으로 금지하자는 근래의 개헌론은 금주헌법 시대의 미국을 휩쓴 지독한 도덕주의 정치의 아류다. 또 15년을 식물상태로 지내온 한 여인에게 음식 공급을 중단해도 좋다는 대법원 판결을 ‘사탄의 판결’로 욕하면서 인권문제라면 행정부나 입법부가 사법부의 판결에 간섭할 수 있다고 믿는 온정주의 정치는 흑인 권익 신장에 진력했던 1960년대의 민주당이 자랑했던 ‘리버럴리즘’의 새 버전이다.

문제는 이런 도덕주의가 그대로 외교에 연장되는 미국의 속성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민주당에서 차용한 공화당의 새로운 신념 목록에는 군사력을 통해서라도 세계를 미국화하려던 과거 민주당의 신념까지 포함되어 있다. 양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20세기의 미국이 치른 전쟁이 민주당 집권기에 편중된 것도 바로 민주당의 이런 전통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공화당의 전략사령탑이며 아홉 살 때부터 공화당원이었던 백악관의 수석 정치참모 칼 로브마저 과거 공화당의 현실주의 대신 민주당의 이상주의를 공화당의 새로운 비전으로 삼는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내린 ‘도덕적 판단’은 이미 외교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심판이 되었다. 게다가 미국은 세르비아나 그루지야공화국과는 달리 북한 체제는 외부 개입으로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의사당에 모기가 들끓어 의회를 개원할 수 없다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억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에프킬라’로 무장한 베오그라드 시민들이 의사당으로 쳐들어간 2000년의 세르비아 시민혁명이나, 미국인 사업가 피터 애커먼이 세르비아 시민혁명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화 〈독재자 타도하기〉에서 지능적 저항의 방법을 학습한 그루지야 국민들이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을 몰아낸 2003년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같은 내부로부터의 체제 변화가 평양에서 가능하다고 미국은 보지 않는 것이다.

평양의 장미혁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재 미국의 결론은 명백하다. 설사 북의 핵실험 준비설로 분주한 현 상황을 무사히 넘긴다 해도 북한의 체제 변화는 외부 개입으로만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 미국의 대북 전략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6월 위기설과 6자회담 재개설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나온 “북한은 주권국”이라는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도 유화 제스처나 북한 달래기로 순진하게 해석할 수 없다. 이 말이 북한 아닌 중국을 겨냥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외교적 언사 해석은 숨은그림찾기처럼 해야 한다. 일본이 강화도 조약에서 중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하려고 ‘조선의 자주’를 못 박았을 때 우리 조정은 그 뜻을 짐작했던가? 그렇다면 매일 뉴스로 쏟아지는 미국과 북한의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관련 당사국들의 정치적 계산과 흥정을 역으로 계산하는 외교의 순발력과 미국 정치의 기류 속에서 북핵 사태의 추세를 읽는 지혜가 함께 필요한 때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