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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7 21:31 수정 : 2005.05.17 21:31

1900년: 런던 651만, 서울 25만.

2000년: 런던 738만, 서울 990만.

인구통계로는 세계 최대도시였던 런던이 1백년간 ‘정체’돼 있는 동안 서울은 40배로 ‘발전’했다. 수도권은 실로 한국경제의 성장 거점이었다. 그러나 ‘불균형 성장’ 전략이 ‘균형 발전’ 개념과 부닥치면서 수도권의 딜레마가 심각해졌다. 손학규 경기지사가 총리 주재 회의를 박차고 나온 것 자체가 이를 상징한다. 언론의 각광을 받은 사람은 손 지사였다. <중앙일보>는 ‘외국투자 내쫓으며 경제 잘되기 바라나’ ‘수도권 규제 망상 버려라’ 등의 논설과 ‘떴다 손X규’ 라는 만평까지 곁들여 가장 적극적으로 손 지사 편에 섰다. <오마이뉴스>가 ‘뜨는 해 손학규, 지는 달 이명박’으로 대선후보를 대비시키는가 하면, <프레시안>은 손 지사 입을 빌려 ‘이해찬은 국제경제 이해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매도했다. ‘스타’와 ‘묵사발’을 만드는 이런 보도 태도는 합리적 대안 모색을 저해한다.

밀튼케인즈시를 15년만에 다시 찾았다. 서울로 따지면 춘천 정도 거리에 있는 영국의 신도시다. 분당 등 4개 신도시 계획이 발표됐을 때 필자는 세계의 몇몇 신도시를 기획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가졌던 의문은 ‘런던에서 이렇게 먼 신도시 산업단지에 과연 기업들이 들어찰까’ 하는 점이었다. 아마추어 도시계획가의 의구심은 쉽게 풀렸다. 런던에서 옮겨온 회사를 포함한 세계적 기업들이 쾌적한 자족도시 환경을 즐기고 있었다. 런던 주변의 규제정책과 밀튼케인즈의 유치정책이 밀어내고 당기는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보아키 아지맹 홍보담당관은 “런던을 앞지르는 교통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엄청난 기반투자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밀튼케인즈의 초창기 광고카피는 ‘런던 마라톤은 끝났다’였다. ‘뭔 얘기냐’는 호기심에, 보조카피를 읽고 나면 이해가 간다. ‘밀튼케인즈에서는 15분 안에 출근합니다.’ 매일 마라톤하듯 2시간 이상 출퇴근에 허비하는 런던시민을 겨냥한 컨셉이었다. 대기오염으로 유명했던 런던도 그린벨트를 비롯한 엄격한 수도권 규제정책으로 쾌적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 도시가 됐다. 런던 주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 곳이 대도시 교외라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양떼가 노니는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요즘은 노란 유채밭이 지평선으로 넘어간다.

한국의 수도권은 스스로 기업유치에 나서면서 멕시코시티와 같은 자포자기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수도권 규제는 계속 풀면서 지방공단 유인책은 빈약했던 탓이다. 예산 써서 해야 할 일을 ‘규제완화’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하려 했다. 포항제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도 교육여건을 서울 못지않게 갖춘 것이었다. 그러고서도, 오히려 수도권 정비법을 탓하며, 효력도 없는데 전면개편하자고 나온다. 수도권의 인구 집중률은 46.3%로 세계 최고수준이고, 서울의 교통속도는 시간당 25.4km로 경쟁도시 가운데 최하수준이다. 전국도로의 한 해 교통혼잡 비용 22조원 중 절반 가량은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수도권 자체의 도시경쟁력 저하는 기존기업의 경쟁력마저 갉아먹는다.

칼자루를 쥔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자본 투자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기업유치로 얼마의 고용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계산되는 눈앞의 이익이다. 그러나 대신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과 침해되는 공공의 이익이 엄청나다는 점은 곧잘 간과된다. 노 대통령은 외국 방문 때 공항주변의 한국기업 간판에 감동받았다는데, 이젠 비행기가 선진국 수도에 접근할 때 수도권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좀 내려다보시라. 노 대통령, 손 지사, 언론사들, … 역사에 남는 ‘공공의 적’이 되지 마시라.

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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