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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8 20:07 수정 : 2005.05.18 20:07

1972년부터 올 4월까지 9차례 북한을 찾은 나는 북한이 핵 능력을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에서처럼 선제 군사공격으로 북한의 ‘체제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핵화 협상을 거부할 합당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다. 포괄적인 비핵화 협상에 따라 조사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핵무기 국가’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가 명백히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양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 능력 해체 요구와 거래하기 위해 그런 조사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지난 2월10일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만들었으며, 핵무기 국가로 대접받길 원한다”고 선언했다. 3월31일에는 미국이 북한 체제교체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핵무기 해체를 더이상 논의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잇단 강경 선언은 지금까지 자신의 핵 능력에 대해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나는 북한의 이런 갑작스런 반전이 군부와 노동당 내 강경파와 협상파-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주도하는 비핵화 협상 지지자-들 사이에 담판의 결과라는 사실을 지난 4월 방북을 통해 알게 됐다.

협상파들은 단계적인 비핵화와 연계해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면 (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모호함이 필요하며, 그것은 만약 핵사찰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전개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의 당혹감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강경파들은 부시 행정부의 자선에 기대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며, 북한은 미국이 7400기의 핵무기를 갖고도 군사적인 수세를 느끼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논지를 편다.

협상파들은 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며 10년 이상 강경파들을 압도해 왔다. 그들은 94년 군부의 반대를 딛고 미 클린턴 행정부와의 핵동결 협상을 관철시켰고, 클린턴 임기 말에는 좌초 위기의 미사일 협정의 첫 단추를 뀄다. 그러나 이런 협상 노선의 성과에 대한 ‘정책적 반성’이 나타나면서, 북한 정부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양은 강경파든 협상파든 자존심이 크게 훼손됐다는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강도높게 추궁한 것이 ‘자존심의 상처’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강석주 부상은 “그(켈리)의 태도는 매우 오만하고 위협적이었다. 그는 마치 법정에서처럼 나를 추궁했다. 나는 매우 모욕감을 느꼈고 국가의 위신을 지켜야 했다.”고 회고했다.

켈리의 방문 이후에도 협상파들은 핵무기 해체를 목표로 한 단계적인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을 접지 않았다. 그러나 6자 회담에 대한 미국의 고집스런 태도는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특히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는 거부하면서 중국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짜증스러워 한다. 백악관이 지난 2월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을 중국에 보내 북한 설득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실수다. 이는 거대한 이웃나라(중국)의 압력에 대해 북한, 특히 군부 장성들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적 반감을 간과한 것이다. 북한 관리는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미 협상은 “북한 주권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평화적인 공존을 하겠다”는 미국의 발언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강석주 부상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워싱턴과 정상적인 관계를 꾀할 준비가 돼 있는 협상파들의 제안을 심사숙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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