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5.18 20:25 수정 : 2005.05.18 20:25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인 마르코스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부자 프로축구단인 인터밀란에게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전지구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인 세계화가 불가항력적으로 퍼져나갈 때,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는 ‘반세계화 기치’를 들고 무장봉기에 나섰다.

마르코스로 대표되는 사파티스타를 볼 때마다 난 골리앗 앞에 돌멩이 하나만을 달랑 든 채 서 있는 다윗이 연상되곤 했다. 그런데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예전부터 이상하게 마르코스를 보면 예의 비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명확하게 알았다. 그건 마르코스의 유려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언술과 전술적 유연함에서 오는 여유였다. 미국 민중과 미 제국주의자를 분리하여 공격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마르코스에게는 파시즘적 미학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 좀 생뚱맞게 느껴지는 마르코스의 이번 제안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축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스포츠이자 가장 큰 민족적 응집력을 가진 스포츠이다. 축구가 주는 역동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고 사회통합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국가주의나 파시즘의 도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민족이나 계급 계층을 뛰어넘는 연대감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축구는 여타 스포츠에 비해서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를 정신력이나 분위기에 의해 반전시킬 수 있는 예외성이 많이 지배한다. 그래서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는 것 아닌가. 마르코스가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이 생뚱맞고 기발한 제안의 배경에는 국적을 초월하여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명문클럽의 정신과 상응코자 하는, 평화와 반세계화에 대한 연대정신이 있으며, 90분 내내 밀리더라도 단 한 골만 성공시키면 이길 수 있는 축구의 예외성에 빗댄, 반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고 느꼈다. 마르코스는 축구공은 반란군에게든 프로축구선수에게든 둥글 뿐 아니라 평등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기묘한 축구경기가 부디 성사되길 바란다.

이경진/충남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