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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로 대표되는 사파티스타를 볼 때마다 난 골리앗 앞에 돌멩이 하나만을 달랑 든 채 서 있는 다윗이 연상되곤 했다. 그런데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예전부터 이상하게 마르코스를 보면 예의 비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명확하게 알았다. 그건 마르코스의 유려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언술과 전술적 유연함에서 오는 여유였다. 미국 민중과 미 제국주의자를 분리하여 공격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마르코스에게는 파시즘적 미학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 좀 생뚱맞게 느껴지는 마르코스의 이번 제안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축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스포츠이자 가장 큰 민족적 응집력을 가진 스포츠이다. 축구가 주는 역동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고 사회통합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국가주의나 파시즘의 도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민족이나 계급 계층을 뛰어넘는 연대감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축구는 여타 스포츠에 비해서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를 정신력이나 분위기에 의해 반전시킬 수 있는 예외성이 많이 지배한다. 그래서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는 것 아닌가. 마르코스가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이 생뚱맞고 기발한 제안의 배경에는 국적을 초월하여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명문클럽의 정신과 상응코자 하는, 평화와 반세계화에 대한 연대정신이 있으며, 90분 내내 밀리더라도 단 한 골만 성공시키면 이길 수 있는 축구의 예외성에 빗댄, 반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고 느꼈다. 마르코스는 축구공은 반란군에게든 프로축구선수에게든 둥글 뿐 아니라 평등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기묘한 축구경기가 부디 성사되길 바란다.
이경진/충남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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