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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8 20:26 수정 : 2005.05.18 20:26

가수 조영남씨의 친일 발언 논란이 일으킨 파문은 우리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 따져볼 거리가 있다. 그의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관용 수준이나 외신의 내용을 본인에게 확인하는 절차 없이 그대로 전한 보도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나는 조영남씨의 창구 선정 방식이 맘에 걸린다. 그가 사적인 모임 참석이 아니라 자신이 쓴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의 일본어판 출간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쿄에 갔다면, 일본 매체들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를 해 대비를 해야 했다. <산케이신문>은 과거사 청산에서 극우적 논조를 펴는 매체다. 그 신문에 실리는 칼럼이나 논설을 보면, 군대 위안부의 실체를 부인하고, 식민지 정책이 해당 지역의 근대화를 촉진했으며,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은 좌경 자학사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를 비틀어 쓴 것으로 악명 높은 ‘후소사’의 역사 교과서는 바로 산케이신문 그룹의 지원을 받아 나온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근접하는 외국인을 찾아내 활용하려고 안달을 한다. 하물며 그물에 넣으려는 대상이 지명도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조영남씨가 그 신문의 정체를 알고서도 인터뷰에 응했다면 무모한 짓을 한 셈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 물정을 모르고 행동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씨의 발언 파문은 분명히 잘못된 만남의 하나다. 광복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류는 오랫동안 잘못된 만남으로 채워져 왔다. 과거사 청산에 당당하지 못했던 한국의 지배층과 식민지 지배 체제에 향수를 느끼는 일본 지배층이 대충 얼버무리며 지내 왔으니 호혜·선린 관계로 가기 위한 새 출발 기회를 놓친 셈이다. 현재의 관계를 규정한 1965년의 한-일 협정 체제로는 발전의 걸림돌들을 들어낼 수가 없다.

역사의 골이 깊게 팬 나라들이 진정으로 화해를 하려면 잘못된 만남이 아니라 잘된 만남이 늘어야 한다. 균형감각과 이해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야 곳곳에 뭉친 역사의 응어리들을 하나씩 풀어갈 수 있다.

그런 잘된 만남의 본보기로 <미래를 여는 역사>를 함께 내는 한국·일본·중국의 모임을 들고 싶다. 세 나라의 역사 연구자와 시민 활동가들은 2002년부터 집중적인 논의를 거듭한 끝에 공동의 역사 교재를 오는 27일 발행한다. 자국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이견을 좁혀가며 하나의 성과물을 낸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역사 갈등의 용암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어 약간의 틈만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이 지역에서 공동의 역사 교재가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시민사회 진영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냈으니 값진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세 나라의 시민사회는 책의 공동 출간에 자족하지 않고 교재의 보급 확대와 질적 개선을 밀어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본지 16일치 10면에 실린 공동 집필자들의 좌담을 보면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학문적 정밀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고, 그런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비나타 스미오 와세다대 교수가 재일동포에 대한 한국 쪽의 인식 부족을 지적한 것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근현대사 연구의 질이 높아져야 역사 공동 연구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 앞으로 잘된 만남들이 널리 퍼져나가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에 미래를 걸고 싶다.

편집인 김효순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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