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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이후 추진된 재벌개혁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함으로써 과거와 같이 재벌 총수 일가가 일반주주 및 예금·보험 가입자의 돈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재벌 총수 일가는 이제 새로운 제도적 왜곡을 도입하여 적은 자본으로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든지, 아니면 재벌의 성격을 가족기업에서 현대적 기업으로 전환시키든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경영권 방어 위주로 전개되고 있는 최근의 재벌정책 관련 논의는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경영권’이라는 것은 주주가 최고경영자에게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도록 위임한 권한이지 재벌 총수 일가가 대대손손 승계하는 권한이 아니므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재산권과는 달리, 경영권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주주와 최고경영자간의 암묵적 합의를 전제로 형성된 ‘조건부 권리’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이와 같은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주주들은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이 100%였지만 현재는 소유 지분이 평균 5%도 되지 않는데, 과거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마치 계모임에서 계주가 다른 사람들은 돈만 내놓고 운용 성과에 대해서는 간여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할 때 일반주주에 대한 재산권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고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을 어렵게 하는 경영권 방어 조처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이해당사자 중심으로 시장규율이 작동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을 활성화할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 재원을 원활히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창조적 파괴에 의한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재벌 총수는 재벌을 가족기업 형태로 계속 유지하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경영권 방어의 근본적인 해법은 기업가치 제고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경영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능력이 있는 인재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지도록 하고, 창업 가문은 대주주로서 신비감을 유지하면서 경영을 감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재벌 총수가 기업집단의 구심점으로서 경영·조정 능력을 발휘하여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한다면 일반주주도 재벌 총수의 효용을 인정할 것이나, 경영능력이 부족하거나 사익을 추구하여 일반주주에 피해를 준다면 경영권 위협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원혁/코리아연구원/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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