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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3 19:50 수정 : 2005.05.23 19:50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

우리나라 대학의 특성 중에 두드러진 특성의 하나가 강한 학생운동의 전통이다. 불의의 권력에 항거한 학생운동이야말로 학원은 물론 나라 전체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랑스러운 대학의 정신적 유산이다. 아직도 운동권 대학생은 보배로운 존재다. 시대의 변화와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유일한 원칙론자의 그룹이다. 그러기에 때때로 이들의 생경한 미숙함도 청년이 표방하는 아름다운 원칙 속에 품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학생운동은 질적으로 달라져야만 한다. 세상의 문제를 제기하되 학생 스스로 해결하려 나서서는 안 된다. 언론이 있고 여론이 있고 법이 있다. 게다가 각종 시민운동단체가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학생운동은 건전한 대학의 발전을 위한 비판적 제안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도 민주적 일상에 적합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안도 폭력 점거와 같은 극한투쟁이 따르면 설득력이 약해진다.

고려대학교가 진통을 겪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를 수여한 학교 당국의 결정을 학생회가 물리력으로 항의, 저지한 것이다. 일반 학생들은 총학의 탄핵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실로 당혹스러운 일은 전국의 민교협 교수들이 학생 징계에 반대하는 성명을 초안하여 교수들의 동참을 촉구하여 나선 것이다. 초안이기는 하지만 성명서는 심히 균형을 잃었다. 물리력을 행사한 학생들에 대한 꾸짖음은 전혀 없고 학교 당국에 대한 비난만 담겨 있다. 회원 개인이나 단체의 차원에서 민교협은 학원과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적이 크다. 민교협 교수들이 존경을 받는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선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의 역할이 무엇인가? 학생의 폭력을 품어 감싸기에 앞서 강한 질책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연전에 오도된 ‘민주학생 감싸기’의 예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학생운동에 주력하느라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과목에 A 학점을 내준 선생의 큰 ‘정의감’을 찬양하는 학생에게서 심각한 대학의 위기를 느꼈다.

민교협의 성명서가 제기한 내용에도 이의가 있을 수 있다. 이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대학과 자본의 유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 모두가 권장하는 ‘산학협동’과 어떻게 다를까? ‘돈은 쓰는 순간 아름다워진다’ 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사회는 부의 축적과정에 숨겨진 과거의 부조리를 문제삼아 원천적 정당성을 부정할 시대를 넘기지 않았을까? 재원이 극히 취약한 대학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더 이상 대학은 고귀한 정신만을 일용의 양식으로 삼아 발전하는 시대가 아니다. 교육에 투자한 원가에 비례하여 성과가 나타난다. 삼성의 기업 경영방식에 철학적 이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없이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한 후에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경영방식도 있을 것이다. 이 회장의 재산 상속 과정이나 삼성그룹의 노조 정책에 불법이 있었다면 합당한 응징을 법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시민운동단체도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성명서가 지적한대로 ‘대학은 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렇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아니면 더욱 중요한 대학의 사명은 국제무대에 경쟁할 인적재목을 키워내는 일이다. 오래 전에 위기를 맞은 대학과 나라의 장래를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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