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4 19:47
수정 : 2005.05.24 19:47
최근 미국 상원에서 작지만 주목할 만한 소동이 있었다. 다음 회계연도의 지역개발금융기관(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 CDFI) 기금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움직임에 맞서 릭 샌터럼 의원과 존 코자인 의원이 이를 8천만달러 규모로 늘리는 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이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54명의 상원의원으로부터 찬성 서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다음 회계연도 전체 예산안의 0.0003%에 지나지 않는 이 기금이 행정부와 의회의 힘겨루기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CDFI 기금은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주도로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 지지 속에서 낙후지역의 지역밀착형 금융기관들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재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기금은 개인이나 단체들로부터 ‘대응재원’을 확보한다는 전제 위에 사업계획 및 그동안의 실적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자금 및 기술지원을 제공한다. 대안적 소액금융단체나 지역신협 등 다양한 수혜 금융기관들은 여기에 시민사회와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더해 낙후지역의 주택마련·사업확대·복지정보센터 건설 등을 돕는다.
그동안에도 이러한 지원방식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낙후지역의 지원금 수혜를 ‘사회적 권리’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좌파 진영에서는 경쟁원리 및 성과기준에 의거하여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시장원리에 치우쳤다는 비판과 함께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낙후지역으로 지원을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금융권과 우파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한다며 기금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지역개발금융기금을 통한 지원은 낙후지역의 재생을 겨냥한 정부개입들 중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자금은 지역개발금융기관들을 매개로 낙후지역에 자활의 터전과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시민사회와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보다 많은 자금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발표된 미 재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 1달러는 21달러의 민간투자로 이어졌다.
따라서 최근의 지역개발금융기금 폐지 시도는 사회적 약자의 이해가 철저히 무시되는 방향으로 변화한 미국의 정치지형과 이에 따른 민주주의 후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투자 유발효과가 큰 이 기금을 사실상 폐지하면 낙후지역으로의 자금유입 중단으로 그동안 어렵게 형성되어 온 지역개발금융 인프라 및 자활금융의 네트워크가 크게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미국사회에 만연된 빈곤의 악순환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소동의 향배는 앞으로 미국의 시민사회가 정치권으로부터 빈곤층의 금융소외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과 배려를 이끌어낼 최소한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존폐 기로에 서 있는 미국 지역개발금융기금은 ‘빈곤의 확산과 구조화’로 크게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낙후지역 빈곤층의 자활에 특화하는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은 정부 차원의 적절한 제도적 지원과 지역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결합될 경우 시장 자체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때 공공·민간의 새로운 협력형태를 세상에 내놓고 그리고 지켜내는 가장 큰 힘은 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성숙한 정치적 역량이라는 점도 다시 확인해 둘 필요가 있겠다.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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