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6 17:51
수정 : 2005.05.26 17:51
요즘 과천 경제부처 관료들은 답답하다. 살아날 듯한 경기가 다시 움츠러드는데도 별 뾰족한 정책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긴 하다. 더욱이 모든 권력을 내려놓으려는 참여정부에서는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무장 해제’를 자청한 자연스런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여전히 ‘대부’ 행세를 하려는 정부 태도는 이중적이다. 정부 재정을 쏟아부으면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행정 조처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의지는 높이 살 만하되 결과는 참담하다. 서민을 위한다는 참여정부에서 빈곤층이 500만명을 넘어서고, 역대 가장 강력한 ‘강남 때리기’에 나섰음에도 강남 집값은 오히려 급등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마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해서는 안될 일, 할 수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특히, 해야 할 일을 안 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 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 정부는 무얼 하지 말아야 하나. 우선 정부가 나서서 ‘시장 만능주의’를 강조하고, ‘힘 센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게 된다’는 식의 경쟁 부추기기는 더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지는 ‘부도날 일이 거의 없는’ 정부보다 ‘이미 망해 본’, 그리고 ‘서서히 망해 가는’ 대다수 국민들이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난방시설이 잘 갖춰진 온실에 앉아서, 삭풍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날씨가 추우니 얼어죽지 않으려면 쉬지 말고 뛰라”고 충고하는 것은 난센스다. 동사자가 속출하는 것을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의 이런 현실 인식과 접근 방식은 오히려 우리 사회경제 구조를 왜곡시켜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 뿐이다.
정부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과도한 ‘애국심’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로서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겠지만 이제 그런 것조차 ‘과욕’인 시대가 됐다. ‘삼성전자 본부장이 바뀌면 외신이 관심을 갖지만 경제부처 장·차관 한둘 갈리는 것은 기삿거리도 안 될’ 만큼 우리 경제에서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삼성이나 현대가 언제 정부 말 착실히 듣고 저렇게 커 왔던가. 상황이 이렇게 달라졌음에도 국민과 민간을 ‘관리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뒤바뀐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욕심을 부리면 경제는 오히려 더 망가진다.
그럼에도 최근 경제 어려움을 틈 타 다시 추경 편성이 거론되고, 환율 하락 저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고, 중소기업 수출을 지원하려 한다고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의 경우를 보나 우리나라의 과거 경험을 보더라도 이런 정책들은 별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 왔다.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 약자를 추스르는 일이다. 경기 침체 과정에서 양산된 빈곤층과 무한 경쟁에서 밀리는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를 살리는 쪽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앞장 서 경쟁 구도를 부추기기보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은 제쳐둔 채, 경기부양 여론에 겨 써서는 안 될 정책을 펴면 오히려 경제를 더 망친다.
정석구/ 경제부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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