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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재미의 압권은 역시 정치면이다. 너무나 많은 소설과 콩트가 지면에 흘러넘치는 탓이다. 그처럼 사소한 몇 마디 말을 키워 전국민의 넋을 빼놓다니! 오래된 신문을 읽다 보면 소설문학이 위축되는 진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하긴 정치기사의 소설성을 말하기 앞서 행보 자체가 정말 문학적인, 예측불가의 초현실주의적인 인물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오래된 신문’ 읽기 식의 흥미가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이 대통령을 향해 또 한 차례 펀치를 날렸다. 하도 반복되는 일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오만불손함, 안하무인, 철저한 국민조작 그리고 왜곡 … 거짓말 … 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자살한 남상국 사장 사건을 떠올리며 써나간 야당 대변인의 칼럼은 정말 ‘오싹하게’ 자극적인 용어로 시종일관하고 있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조차 나치 독일에 대해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라고 다짐하는데, 대한민국 제1 야당 대변인은 “우리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맙시다”라고 부르짖고 있다. 정말 하늘이 울고 땅이 꺼지는 분노와 증오가 아닐 수 없다.
생각의 자유, 기분의 자유, 누가 뭐라 하랴. 하지만 이 대목에서 잠깐 소설을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작품에 앞서 먼저 팩트. 가만 생각해 보니 그는 지난 대선 때 정몽준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왜 정 후보여야 하는지 조목조목 논리를 세우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세상이 다 알듯이 그 정 후보와 노 후보가 연대를 했다. 선거 전날 뒤집지만 않았다면 정권의 반은 정몽준 진영으로 갔을 것이다.
이때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만일 노-정 연대가 깨지지 않았다면? 이 두 세력이 주축이 된 신당이 결성됐다면? 그리고 총선이 이어졌다면? 그렇다면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전여옥씨가 새 대통령이 만든 신당의 대변인이 됐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어쩌면 청와대 대변인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 측근이 되기 전 박근혜 의원을 두고 ‘유신공주’라는 조어로 스매싱 펀치를 날리던 순발력 아닌가. 자, 이 소설의 결미 부분을 써보자. 새 정권의 대변인은 어떤 소신을 갖고 누구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터뜨렸을까. 그것을 예측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현 열린우리당 내 최고 강경파의 발언을 참조하면 될 테니까.
일간지 정치 소설가들이 벌써부터 대선 경마를 시작하고 있다. 현재까지 흥행에 가장 성공하고 있는 인물은 박근혜 대표로 보인다. 상대적 진보성을 보이는 당내 소장파와 극우파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면서 견디는 모습이 오히려 지지 여론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번민과 고통이 깊어 보일수록 지지율은 더 높아갈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끓어오르는 분노, 결연한 의지, 무시무시한 독설 따위는 지겹다. 단세포적인 쾌감에 호소하는, 언어폭력적인 말잔치가 얼마나 허망하고 편의적인 것인가. 오래된 신문이 가르친다. 아방과 타방, 적과 동지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뒤집어질 수 있는 정치지형인지. 그렇다면 차기의 내 한 표는 가장 덜 공격적이고 포용력 있는 후보, 아울러 가장 순하게 말하고 일관성 있는 대변인을 둔 후보 쪽에 헌납하겠다.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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