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7 17:46
수정 : 2005.05.27 17:46
전국의 복지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으로 우려하는 일이 지방 분권화에 따른 복지재원 부족과 미신고 시설 양성화 계획문제다. 이 중에 미신고시설 안정화대책은 필자가 현업에 근무할 때 직접 수립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안이기도 하므로 몇 가지 문제점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계획의 기본 취지는 열악한 조건 속에 방치된 미신고 복지시설을 더 이상 정부가 기존 법규를 들어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복지당국은 복지법인 등 자격을 갖춘 복지시설에 대해서만 복지재원을 분배하고 관리를 해 왔다. 그런 태도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미신고 시설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행정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다. 화재로 사망사고가 일어나도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고를 받아보니 복지부 실무 책임자들이 예상했던 수치를 3~4배 이상 웃돌 뿐 아니라 미신고 시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매우 복잡했다. 공동 모금회를 통해 40~50여 억원의 재원을 확보해 일단 비닐하우스 시설은 건물임대를 통해 주거문제를 급한 대로 해결하고, 상하수도 설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긴급예산 편성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신고기간이 끝난 이후에 전체적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식예산을 편성해 시설 개·보수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시설 운영자들에 대한 자격교육을 시작하도록 조치했다.
필자가 물러난 이후 얼마 안 있어 실무책임자들도 교체되면서 미신고 시설에 대한 후속대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복지부의 규제중심의 태도까지 두드러지면서 많은 불만이 야기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다시 현장의 애로점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지역에 따른 편차도 큰 것 같다.
따라서 양성화계획의 취지에 합당하게 미신고시설을 양성화하려면 무엇보다 기존의 시설기준을 좀더 세분해 그룹홈과 주간 보호시설과 같은 일시적 복지기능을 갖는 다양한 형태의 시설을 제도 안에서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와 규정들을 고쳐야 한다.
둘째는 미신고시설 내용과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설명회, 연찬회, 재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법적, 비공식적 교육과정이 미흡하므로 대대적인 직무관련 교육이 필요하다. 시설개보수를 할 때도 복지시설 관련 규정을 전혀 모른 채 일반건축업자에게 맡겨 공사를 했다가 복지담당부서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까닭은 체계적인 교육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셋째는 1,100여개에 달하는 미신고 시설을 양성화하려면 규모에 따라 시설 개보수 예산이 지원돼야 현실적으로 양성화가 가능하다. 적자에 허덕이는 대다수 미신고 시설들이 자체적으로 조건을 충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넷째, 2005년 7월말로 되어 있는 양성화 시한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일부 조건부 시설은 복지법인자격 부여에 문제가 없는 만큼 합법적인 지위를 보장하고 법령 규정 등의 개정작업에 시일이 소요된다면, 또 준비기간이 더 필요한 시설은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노인요양시설을 비롯한 중산 서민층의 복지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는 현재 이들 시설을 제도 안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신규시설을 새로 짓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다. 차제에 소규모 시설과 그룹홈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양성화 대책이 추진됐으면 좋겠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한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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