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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모토사이클 다이어리>에 잠깐 비치는 파타고니아 초원의 실제 모습도 황량하다. 몇 해 전부터 이 황무지 같은 땅이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사전의 정의와 달리 그 곳이 지구 위의 마지막 낭만과 모험의 땅임을 알게 해준 건, 얼마 전 방한한 칠레 출신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였다. 그의 소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엔 황당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감시망을 따돌리며 초원의 밤하늘 가득히 전파를 쏘아 보냈던 무선라디오 방송사, 고래와 대화를 나누던 소년 판치토, 봉기한 소작농들을 향해 정부군의 발포가 시작된 밤 9시28분의 시각에 70년 넘도록 멈춰서 있는 히라미요 역의 시계 …. 황금으로 가득한 ‘트라파난다’ 왕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가서는 “트라파난다엔 괴물과 역병이 가득하다”는 보고서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16세기 칠레 총독 아리아스(일설엔 그가 트라파난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이런 보고서를 남겼다고도 한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세풀베다는 “아리아스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희한한 상상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환상문학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을 읽은 직후에 영국의 저널리스트 브루스 채트윈이 73년에 쓴 <파타고니아>가 손에 들어왔다. 그 책에 쓰기를, 파타고니아는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 탐험가를 불러들인 신비의 땅이면서 망명자, 죄수, 몽상가가 몰려든 은신처이자 해방구였다. 미국 서부시대의 은행강도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처럼 볼리비아에서 죽은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로 내려와 은행을 계속 털었고,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변호사 오렐리 앙트완 드 투냉은 파타고니아에 ‘나홀로 왕국’을 건설했다가 감옥에 갔다.(그가 세운 ‘신프랑스’ 왕국의 망명 왕실이 아직도 파리에 남아있다고 채트윈은 전한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를 찾은 시인과 모험가들의 유랑 기질을 보들레르의 시에 빗대 ‘고향을 꺼리는 위대한 고질병’이라고 말한다.
파타고니아에 대한 나의 동경은 기실 뻔한 거다. 여러 사건과 곡절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실망, 우리 일상과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신자유주의의 각박함,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삶의 원형질 같은 정서로 회귀하고 싶은 욕구. 그게 패배자, 망명자, 방랑자의 땅 파타고니아를 떠올리게 한다. 49년생인 세풀베다는 사회주의자로 자라 아옌데 정부에 복무했다가 73년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구속돼 3년 동안 갇히고, 16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자전 소설에 가까운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서 고생 끝에 마침내 할아버지의 고향인 스페인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환영처럼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누가 되었든 행복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선 안 되는 거야!” 울림이 있지만 행복? 참 어려운 말이다. 지난해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행복해지길 두려워 마십쇼”라는 브라질 노동당 구호를 빌려와 내걸었다. 그런데 지금 노동조합은 어느 때보다도 고전하고 있다. 행복은 결과로 느끼는 감정일 뿐, 구호로 내걸기 힘든 말 같다. 역시 파타고니아로 가야 ….
눈을 뜨니 월요일이다. 젠장!
임범 문화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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