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29 17:11
수정 : 2005.05.29 17:11
흔히 ‘오천년 역사’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 ‘한국 사회’의 나이는 이제 50살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오늘 우리 삶의 대부분 모습은 해방 이후 그것도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냉전’이라는 말은 흔히 국제정치, 즉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에 국한된 용어로 여겨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은 이미 냉전 초기부터 이것이 단지 나라 밖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내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 교육, 문화, 가정생활 등과 같은 촘촘한 일상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는 사건임을 간파하였다. 세계혁명으로 인류를 공산주의 단계로 ‘도약’ 시키려는 쪽이나, 그런 생각을 극악무도한 악마의 소행으로 보아 박멸하려는 쪽이나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학살과 전쟁도 서슴지 않는 한바탕 굿을 벌여야 했다. 또 양쪽 진영 모두 이러한 채찍과 더불어 ‘풍요한 삶’이라는 당근을 내걸고 경쟁적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열을 올렸다. 보통 사람들은 그리하여 이 채찍과 당근 사이에서 생각과 행동과 욕망을 규정당하며 일체의 ‘열외’ 없이 양떼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얌전하게 살아가도록 통제당하였던 셈이다. 광주에서 남영동으로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배경으로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왕왕거리던 80년대의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 ‘대한민국’이야말로 이 ‘냉전 시대’의 특출한 모범생이었다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냉전이 끝났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세기 새로운 시대로 또 다시 변해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도 ‘세계화’를 거쳐 ‘동북아 시대’로, ‘경쟁력’과 ‘유연성’의 시대로, 무선 통신망과 웰빙의 시대로 흘러온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가도록 이행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나라 전체를 인도할 만한 역량을 갖춘 세력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그 변화의 길목에서 무수히 희생되고 벼랑 끝으로 몰리는 약자들의 고통과 순식간에 엄청난 재물과 권력의 기회를 잡는 이들의 열띤 흥분이 엇갈리는 혼란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다가 냉전 시대의 ‘대한민국’의 골간은 아직 무너지지도 않았다.
누군가 위기란 “옛날의 것은 죽었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옛날의 것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또 만들어가야 하는 이런 상황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것도 누가 만든 말이지만, “미로 속의 갈림길”이라는 말은 어떨까. 밑도 끝도 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헤매느라 가뜩이나 어지러운 판인데, 발밑의 길은 두 가닥으로 찢어지고 있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금새 출구로 나가게 될 수도, 또 다시 기약도 없는 팔방돌이가 시작될 수도 있다. 동서남북 전후좌우도 분간을 잃은 상태에서 그렇게 결정적인 선택을 또 내려야만 하는 처지이다.
다른 방도는 없다. 잠깐 눈과 귀를 닫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가를 차분히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 별이 북극성이며 남십자성인지 만큼은 먼저 가리고 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할 대상은 ‘이쪽이 길이다’라며 소리높여 우리를 또다시 어딘가로 몰고 가려는 ‘목자’들일지도 모른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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