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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30 19:19 수정 : 2005.05.30 19:19

“안녕하세요? 난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또 애들의 엄마였구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셜리 발렌타인이 되었답니다.함께 와인 한잔하시겠어요?”'

중년의 평범한 가정주부가 자신을 찾아가는 연극 셜리 발렌타인의 대사이다. 요즘 한창 공연중인 이 연극을 보러 가면 집안에서 벽이나 보며 벽과 능숙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주인공 셜리 발렌타인에 공감해 함께 웃고 한숨 짓고, 그러다 눈물까지 보이는 ‘아줌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편의 연극을 보기 위해 계모임 날로 시간을 맞춘 것 같은 아줌마들은 일년 전 이맘 때 잘 보관해 두었을 것 같은 약간은 패션이 지난 양장 한벌에 자주 신지 않아 불편해 보이는 하이힐과 모처럼 한 티가 나는 짙은 화장이, 하나 같이 맘 잡고 나온 느낌을 확-주는 모습들이었다.

‘저런 차림으로 연극을 보기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규모 있는 음악회도 아니고 이런 소극장에 파티 복장처럼 하고 앉아서 외롭다고 울부짖는 여자를 보며 공감하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곧 그게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 손숙 선생님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떨떠름하게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기에 대해 두서없는 수다를 떨었다. 아직도 연극 한편을 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힘든 일인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에 대해서… 그리고는 어두웠던 관객석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눈물을 훔치는 그녀들에 대해서 말이다.

드라마를 기획할 때마다 주 시청층인 아줌마들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항상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영업비밀이기도 하지만, 차마 대놓고 말하기도 그런 기획 포인트는 ‘아줌마들을 열받게 하자’ 이다.

남편에 아이들에 거기다 경제적인 부분까지 일정부분 맡아 책임져야 하는 요즘 아줌마들의 답답하고 쌓여있는 부분을 건드려 일단 ‘열을 받게’ 한 다음 풀어주자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일련의 기획들이 성공해 아줌마들은 연극 공연장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혼자 앉아 찔끔거리며 눈물을 훔치게 되고 만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성공이 결코 유쾌하지가 못한 면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열 받게’ 하자고 표현한 것이지, 결국 그들을 대변하자는 의도로 출발한 기획이고 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의도이지만,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답답함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여자들을 위했다는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언제까지 그들은 눈물지어야만 할까?

앞으로 내가 꿈꾸는 공연장엔 화장기 없이 청바지나 편한 티셔츠 차림의 아줌마들이 유쾌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즐기는 모습들이기를… 그리고 내가 쓰는 드라마의 여자주인공들은 더 이상 남편과 남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신이 주도하는 인생의 주인공이기를… 눈물 없이 웃음이 가득하기를…

그렇게 대한민국의 문화가, 전반적인 삶이 바뀌어 가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지금은 셜리 발렌타인인 손숙 선생님에게 신나는 캉캉 같은 연극 한편 하자고 졸라볼까?

박예랑/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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