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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31 19:36 수정 : 2005.05.31 19:36

지난 며칠 간 비료 20만톤이 북한에 보내졌다. 그리고 이제 한반도는 운명의 6월을 맞았다. 6월10일 께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6월 하순에는 한일 정상회담과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린다.

지금 북한은 두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료를 받는 손이고, 또 하나는 핵무기를 다루는 손이다. 이 두 개의 손은 서로 전혀 다른 전략과 결과를 지향하고 있다. 북한경제의 위기는 중공업 우선전략을 지탱할 자원이 고갈된 데서 오는 체제상의 위기다. 축적원의 고갈은 공업생산의 축소를 가져왔고 이는 농업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외부로부터 끌어 들여야 한다.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 비료가 들어가면 기존의 농법체계에 자극을 준다. 생산이 늘어나면 시장유통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경직된 집단농업체제에 새로운 인센티브 체계를 도입하는 조건이 마련된다.

외부로부터 자금·요소·기술·식량이 유입되고 시장이 커지는 것은 시스템 진화라는 ‘도미노 쓰러뜨리기’의 시작이다. 비료를 받고 특구를 만드는 손은, 이렇게 새로운 발전전략을 추구하는 손이다. 개방과 시장화의 전략을 채택해야, 6ㆍ15 선언에서 제시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그러나 북한은 또 한편으로 핵무기 보유를 언급하고 있다. 핵무기가 협상에서 몸값을 올리고 ‘체제’를 보위하는 데 잠시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체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막다른 길이다. 다시 군사공업을 최우선하는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권적 국유기업과 집단농업, 국가독점적 유통체제를 강화하고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 통로를 끊어야 한다. 핵 관련 국제질서의 비대칭성과 불공정성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핵무기를 만드는 손은 민생에 고통의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미국도, 북한도, 핵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의 하나, 일부 보도에서처럼 핵실험이 이루어진다면, 미국은 물론, 한국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국제협조 하에 경제적 제재를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금강산, 개성 등에 많은 자산 투자를 해놓은 한국은 괴로운 입장에 처한다. 경제 제재의 성패는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으므로, 미국과 일본은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중국조차도 미국의 소비력에 의존해서 성장하고 있으므로, 결국은 일정하게 서로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은 한국은 선택의 여지가 더 제한된다. 한국과 중국이 일부분이라도 국제적 경제제재에 참가하면, 양국에 의존도가 높은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또 겪어야 한다.

평양에 가기 위해 비료를 ‘공짜로’ 북한에 제공했다는 식의 마구잡이 조롱에는 초연하자. 비료를 뿌리려는 손을 잡는 것이 남북한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 그러나 굳이 북한이 비료보다 핵무기를 우선한다면, 개혁 진보 세력은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나쁜 상황을 피할 준비도 해야 한다. 한국은 한미일 공조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한 세트로 하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촉진자’ 역할을 적극 모색하자. 결단은 강요받는 것보다는 선제하는 것이 좋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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