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21:26
수정 : 2005.06.01 21:26
나는 지리학과 학생인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 학기 적어도 한 번은 전국 곳곳을 답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지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지리학과 학생에게는 답사를 통해서 생생한 학문의 현장과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답사를 다녀온 지역은 울릉도였다. 울릉도 성인봉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고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숱한 인파가 밀려다니는 도심의 한복판에서 결코 느끼기 어려운 감성이었다.
모두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준비해온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는 손에 들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의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았다. 먼저, 성인봉에 올라선 자신의 모습을 찍고, 주변의 친구들과도 한 컷, 드넓은 바다도 한 컷. 쉴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무얼 했을까”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정상에 흩날리는 깨끗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느낌, 어쩌면 사람들은 그 짜릿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등산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1인1카메라, 혹은 1인2카메라의 시대라는 화려함 아래, 성인봉의 꼭대기에서조차 카메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언젠가부터 최첨단 기기와 붙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다음에 성인봉에 또 올라올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울릉도의 성인봉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깨끗한 바람을 한껏 들이키고, 렌즈가 아닌 눈 속에 더 많은 감상을 담아갈 수 있도록.
김창현/서울대 지리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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