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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5 17:58 수정 : 2005.06.05 17:58

큰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나 일기학원 다닐래.”라고 말했다. 농담하긴 이른 나이였다. 아이는 이미 부모 세대에겐 낯선 그런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본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영어점수가 90점이고 영어과목의 학년평균은 84점. 그런데 학년석차는 347명 가운데 187등. 점수는 평균보다 높은데 석차는 왜 평균보다 낮을까. 정황을 파악하는 순간 나는 아찔했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에서라면 성적이 고루 분포돼야 하건만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90점과 100점 사이에 몰려있었다. 학원과 과외의 집중포화를 받는 학생들에게 학과시험은 식은 죽 먹기인 반면 부모의 지원 없는 아이들이 절망적으로 뒤처져 평균점수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공부가 좀 되는’ 아이들 사이에선 ‘실수 안하기’ 경쟁이 치열하다.

자녀교육이 점점 고난도의 아크로바트가 돼가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나쁜 부모’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엄마는 아이의 공부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대신 학원에 가서 노트필기를 해오고, 어떤 엄마는 영어권나라에 거주하는 효과를 위해 하루 세시간씩 영어CD를 틀어놓는다 한다. 그러면 그들이 ‘좋은 부모’일까, 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학원과 시험 틈새에서 동급생들과의 처절한 경쟁으로 10대를 보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어갈 사회에 관용과 여유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족의 미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신강화라는 교육부 방침에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며 서울대 총장의 논술고사 얘기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우수한 학생을 고르겠다는 학교쪽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내신 감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러워서다.

교육부에 3불정책이 있다면 나 역시 그쯤은 있다. 당국과 개인의 위상 차이로 인해 내 3불정책은 모두 의문형으로 끝난다는 점이 다르다. 1, 늦은 밤까지 학원을 몇 개씩 순례하게 안하면 안될까. 2, 남편을 기러기 만들면서 아이들 데리고 조기유학 나가는 건 문제 아닌가. 3, 사립학교나 대안학교보다는 공립학교의 평균적인 환경에서 공부 시키는 게 옳지 않은가. 하지만 내 3불정책도 지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자녀교육이 아크로바트급이 된 데는 사회구조적 이유들이 있다. 경제규모의 급팽창은 탐욕을 키우고, 심한 빈부격차는 경쟁심을 부추긴다. 또한 아직 계급이동이 활발한 한국사회에서 학력은 계층상승의 가장 쉬운 경로다. 게다가 낙오자에겐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아찔함, 부실한 사회복지에 대한 불안감이 학력경쟁에 절박하게 매달리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교육열풍에서 여성문제를 본다. 70~80년대에 여성의 대학진학은 보편화됐지만 사회에 진출하는 여자들이 많지는 않았다. 가정으로 들어간 이 고급인력들이 유휴노동력을 쏟아 넣을 구멍을 찾았으니 그것이 자녀교육이라는 블랙홀이었다. 이 분야에서 한국에 버금갈 만한 싱가폴, 대만, 일본이 모두 갑자기 잘 살게 된 아시아 나라들인 동시에 여성문제가 잘 안 풀리는 고학력사회라는 공통점이 있다. 교육열풍엔 좌절감에서 비롯된 집단히스테리 성분이 있다.

사회가 불합리한데 교육부더러 합리적인 교육입시제도를 내놓으라는 건 아카시아나무한테 왜 사과가 열리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격이다.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싶으면 내신등급제를 만드는 쪽보다 여성을 사회로 불러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더 빠를지 모른다.

조선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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