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7 19:11
수정 : 2005.06.0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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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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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사태’를 계기로 고조됐던 ‘삼성 경계론’이 사장단회의를 고비로 수그러들고 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그 회의야말로 삼성 문제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느 누구도 ‘삼성 쟁점’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사내 분위기를 전해준다. 오고간 얘기들은 그저 총수가 들어도 섭섭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사장들은 ‘일부 비판’을 ‘사회경제적 박탈감’이나 ‘반기업 정서’ 등에 따른 것으로 돌렸다.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기 위해, 사회공헌과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 세가지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국민기업이 무엇인지, 삼성이 집중연구했다는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을 통해 알아보자. 에릭슨 사브 등을 거느린 발렌베리는 고율의 세금과 사회보장 부담금을 내 사회에 공헌한다. 삼성전자처럼 십수조원에 이르는 세후 이익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노조 대표는 중역회의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고, 신규사업 진출 등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국민경제를 고려해 정부와 긴밀히 협의한다. 삼성은 어떤가? 노조 설립 자체를 막고 있고, 사내 민주주의는 사장단회의에도 없다. 자동차 진출 때도 총수의 결심을 막을 견제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상공부 전문관료들의 저항을 지역정서와 정치를 끌어들여 돌파했고, 자본의 힘으로 언론을 무장해제했다.
삼성의 자동차 진출은 외환위기 한 요인이 됐지만, 삼성은 그 위기를 거치면서 재계 1위 자리를 굳혔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보면 환란의 최대 수혜자다. IMF 와중에 자동차를 정리했고, 빅딜을 통해 반도체에서 독과점체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이 한국사회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로 나타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경제권력, 그것도 한 재벌이 국가와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발렌베리는 스웨덴 경제 공헌도가 삼성보다 훨씬 크면서도 민주적 협력틀 안에 있기에, ‘국가 내 국가’로 불리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삼성은 이제 ‘국가 위 국가’로 손색이 없다. 국민들이 의식 못하는 사이 국가를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적 통제의 대리인이어야 할 정부는 대통령이 나서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권력이양을 선언했다. 대부분 경제장관들과 교육부총리까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고 상당수가 친삼성이다. 지난해 경실련이 가장 개혁적이고 정책만족도가 높다고 평가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유승민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과 함께 삼성의 자동차 진출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경제학자다. 참여정부와 경실련의 ‘코미디’에 웃을 수만 없는 것은 그가 지금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삼성의 한국사회 지배를 방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와 국가 경제정책의 산실이다. 삼성 정보망은 국정원을 능가하고 미디어 네트워크를 낀 홍보조직은 국정홍보처와 게임이 안 된다. 정부는 허구한 날 언론의 비판을 받아도 삼성은 대개 성역에 머문다. 한국은 이제 삼성이 먹여살리는 사회가 됐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삼성의 결정이 잘못되면 한국경제가 결딴난다. 자본의 팽창이 국가의 위축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사회공헌 활동? 증여세 법인세 제대로 내면 된다. 커뮤니케이션 강화? 지금도 넘친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 나오게 노력? 잘나가는 기업 잡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바라는 것은, ‘일부 비판’이 삼성과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걱정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인식했으면 한다. 그리고 ‘독단’이 걸러지는 합리적 지배구조를 갖췄으면 한다. 법규를 위반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국가 내 기업’에 머물기를 고대한다. 쉬운 일 아닌가? 그러면 나부터라도 이 회장과 삼성을 존경하겠다.
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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