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8 19:28
수정 : 2005.06.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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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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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한국시각)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각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외통부 장관이 김영삼 정부를 포함해서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중요한 양국 사이 정상회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니, 종래의 회담에 비해 의미나 중요도의 격이 다른 것임은 분명하다.
북한 핵 위기, 한-미 동맹의 좌표 설정 등 현안들의 무게가 큰 만큼 노무현 대통령이 회담에 어떤 자세로 임할지가 주요한 관심거리다. 수구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모르는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 등 어설픈 이론을 펼치다가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는 노 대통령이 포플리즘적 발상에서 나온 정책의 미숙성을 인정하고 꼬리를 내리거나, 아니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면박을 당하고 돌아왔으면 하는 기대심리가 배어 있는 듯하다. 동맹관계의 파열음이 커지면 현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런 정권이 권력의 자리에 계속 버티고 있으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주장으로 이어가고 싶은 것이다.
수구적 논리의 함정은 미국의 정책 방향에 맞춰가면 우선 큰 탈이 없고, 미국이 한국의 이익을 대충 끌어안아주리라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현실론으로 가장한 이런 시각이 과연 현실적으로 적합할까? 나의 경험으로는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날로 복잡 미묘해지는 세상에서 설사 동맹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자비스런’ 대국이 헤아려 보살펴주리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수년 전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받은 인상이 지금도 새롭다. 국무부나 국방부에서 아시아 분야를 다루다가 물러나 정책연구소나 외교포럼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화제가 일본의 우경화 조짐이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이웃나라들의 우려로 옮아가자 이들의 다수는 한국인들의 피해망상증이며 히스테리라고 잘라말했다. 일본이 전후 평화헌법을 만들어 세계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냐는 투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강조하는 것은 미-일 동맹을 깨려는 중국의 음모이며, 한국인들이 거기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우리 처지에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이다. 북핵 위기는 확고하게 그러나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차단하면서 긴장을 높이는 미국 네오콘들의 시도에 한반도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수구세력들이 아무리 한-미 동맹의 현상을 개탄한다고 해도 한-미 관계가 한쪽으로 되우 기울었다가 조금씩 수평으로 가는 과정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86년 조지 슐츠 당시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선발대로 온 경호팀이 외무장관실에 세퍼드를 끌고 와 수색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차관보급 관리가 와서 우리 정부의 상대역은 물론, 장·차관도 들러리로 만들고 고갱이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꺼내던 무례한 행태가 사라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그저 다리를 꼬고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민족의 기개를 보인 것처럼 청와대 관리들이 홍보를 하던 웃지 못할 시기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조리있게 얘기하기를 바란다. 논리와 실용적 방안을 갖고 얘기해서 무시당할 만큼 우리의 종합적 국력이 모래성 위에 있지는 않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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