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8 21:27
수정 : 2005.06.08 21:27
올해 4월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항일 시위가 크게 벌어졌다. 이는 일본 정부 요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평화헌법 제9조의 수정 움직임, 그리고 일본이 저지른 침략 전쟁의 피해국에 대한 사과 거부에 자극받은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문화계 인사 9명이 주축이 된 일본 ‘9조회’ 회원들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및 한국 학자들과 좌담회를 연 지 반달도 안돼 벌어진 사태다. 9조회 회원들은 일본 안에서 평화헌법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연을 해 왔다. 이런 적극적인 정치적 태도는 중국 지식인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중·일 관계는 국가 간 관계일 뿐 아니라 인민 사이의 상호 이해와 인식의 관계이다. 일찍이 전쟁과 냉전의 세월에도 두 나라 지식인과 사회운동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예를 들면 루쉰 시대에 일본의 많은 진보적 지식인과 작가, 학자들은 중국의 진보적 지식계를 지지하고 당시의 백색 테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10년 동안 나는 일본 지식인들과 접하면서 중국에 대한 그들의 깊은 관심과 그들의 몸에 붙은 국제주의적 태도에 감동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세기의 얼마 동안 중국의 진보적 역량도 피압박 민족의 해방운동에 주목한 바 있다. ‘9조회’ 회원들의 중국 방문과 두 나라 지식인들이 진행한 좌담회는 비록 작은 모임이지만 모든 관계가 ‘국가’ 사이의 관계로만 덮여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고정된 껍질을 깬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적어도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전통을 다시 일깨웠으며 중국과 한국, 일본 사회에 또 다른 방식의 교류와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함을 일깨웠다.
나의 마음 속에는 확실히 두 개의 일본이 있다. 하나는 이런 벗들이 보여 주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며 우의를 중시하는 일본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침략 전쟁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등의 국가 행위에서 보여지는, ‘진실된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일본’이다. 나는 가끔, 일본을 체험해본 적이 있는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대개 이런 ‘두 개의 일본’을 느껴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동북아시아 지역의 통합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 가운데 사회운동의 상호 연결, 지식인의 교류 공간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주변에 있다.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지 않는 한 지역 통합은 여전히 시장과 자본, 국가의 주도권 아래 놓일 뿐이다. 최근 ‘유럽연합헌법’이 어려움이 직면한 건 일정하게 진정한 ‘유럽 공민사회’가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우리들이 아시아 통합에 관해 논의할 때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다행스러운 건 지난 몇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지식인들 사이의 교류와 이해가 이미 크게 늘고 있어 이미 두 나라 문화적 실천의 중요한 유기적 구성 성분이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 일본의 한 선배 학자는 20세기 전기 일본으로 유학간 중국 학생들을 이렇게 비판했다. “중국 유학생들이 일본에 온 것은 서방을 배우기 위해서일 뿐이지 일본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우리의 눈길은 늘 가까운 주변 세계를 넘어 ‘어디에나 존재하는’ 서방을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각자의 이웃 나라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과 세계를 다시 인식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인식과 이해의 과정은 서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교류, 협력과 분투의 과정이다.
왕후이/ 칭화대학 교수 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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