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9 21:01
수정 : 2005.06.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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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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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기업인,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각종 규제와 반기업 정서, 경영권에 대한 위협과 더불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좌파적’ 경제정책이 투자부진을 초래한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 논쟁의 대부분이 대기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었고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대기업의 투자부진은 지속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었다는 주장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주장인가?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뤄진 투자가 적정수준에 비해 미흡했다거나, 지난 몇 년 사이에 투자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었다는 증거부터 제시해야 한다. 기업 투자의 적정수준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수치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원칙은 제시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투자를 통해 얻는 수익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고,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지난 몇 년 동안 투자부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투하자본수익률이 가중평균자본비용을 밑도는 등 수익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투자가 이뤄졌으나, 대마불사의 신화가 붕괴된 후에는 투자수익률이 자본비용을 약간 상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단기에 상환해야 하는 부채로 나눈 유동비율도 위기 이전에는 90%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후 개선되어 2004년에는 120%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서, 우리나라 기업이 현금만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제조업부문 부채비율의 경우 1966년 118%에서 8.3조치 직전인 1971년 394%로 급상승한 이래 300% 내외를 유지했으나, 경제위기 이후 급락하여 2004년에는 104%로 개선되었다. 이처럼 경영분석지표가 개선된 데에는 채무조정도 한 몫을 했으나, 살아남은 기업들이 더 이상 정부의 암묵적 보증이 작동하지 않음을 깨닫고 경영행태를 바꾼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의 투자증가율을 봐도 대기업의 투자부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산업은행의 기업설비투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3년과 2004년 대기업의 설비투자는 각각 27.4%와 45.9%나 늘어났다. 투자부진은 커녕 연구개발부문을 포함하여 핵심역량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투자증가율이 낮았던 쪽은 중소기업으로서, -3.4%와 3.8%를 기록했다.
결국 대기업 투자부진론은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활동 및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정책이 대기업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투자부진론에 현혹되어, 경제위기 이후 정착되고 있는 규율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지 않도록 정부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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