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12 17:27 수정 : 2005.06.12 17:27

지금은 코미디 프로를 쓰는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지만 17년 전엔 할리웃키드의 꿈을 키우며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사에 취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영화사의 사장은 유명 감독 이였는데 지금은 보편화된 멀티플렉스 극장을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한 분이었으며 ‘찰리 채플린 시리즈’ ‘아마데우스’ 등을 수입한 영화적 안목과 열정이 대단한 분 이었다. 지금은 컴퓨터그래픽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향토물을 찍기 위해 시골 마을의 전봇대를 모두 뽑아버리기까지 했다.

다만 돈에 있어서는 무척 짠 편이라서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면 중국 집에 가서 “자~ 맘대로 시켜먹어. 난 자장.” 정말 어쩌다가 고기로 회식하는 날에는 삼겹살 집으로 갔다. 돼지고기는 바짝 구워야 먹을 수 있었기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그 사장은 “어서들 먹어 먹어”를 연발하며 구워지지도 않은 돼지고기를 계속 집어 갔다. 그러니 한 점이라도 먹으려면 구워지기 전에 젓가락으로 고기를 누르고 있던가 덜 익은걸 집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난 삼겹살이 아니라 샤부샤부를 먹는 줄 알았다. 그런 분이 전혀 돈을 아끼지 않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촌지’였다.

밀란 쿤데라 원작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수입하여 ‘프라하의 봄’이란 제목으로 개봉을 할 때였다. 영화흥행의 일주일은 기획자의 책임이고 그 후부터는 감독의 책임이란 말이 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홍보에 따라 관객동원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영화개봉에 앞서 한번이라도 더 언론노출을 위해 기획실에서는 온통 전쟁을 치르게 된다. 기자시사회를 준비하는데 내게 주어진 임무는 보도자료를 만들기, 보도자료에 ‘촌지’끼우기, 그리고 기자에게 조용히 전달하기.

기자 시사회가 끝나고 한 숨 돌리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저… 죄송하지만 이건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겨레>의 영화담당 여기자였다. 그 봉투를 받아들며 오히려 내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워낙 일괄적으로 처리되던 관행이라서…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주는 돈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전달했다는 생각에 무척 창피했다. 돌려 받은 봉투를 들고 사장실로 갔다. “한겨레는 정말 안 받던데요.” 그때 사장의 반응은 “그래? 돈 싫다는 사람도 있네…”

그 후로도 내 주요 임무는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촌지’가 담긴 보도자료를 배달하는 일 이였다. 4대 일간지 기자들에게는 내 월급 보다 많은 액수의 봉투를 전달하면서 심한 자괴감을 갖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점점 익숙해져 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서 영화사를 떠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노조를 만들다가 잘렸지만…)

그 뒤 영화와는 상관없는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내 월급보다 많았던 그 ‘촌지’를 가볍게 거부할 수 있었던 그 여기자의 글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볼 때면 그때의 아름다운 장면이 생각나 혼자 미소짓곤 했다. 최근 그 여기자 분의 인터뷰를 <씨네21>에서 봤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는 기사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사진을 보며 잠시 그 때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내 손으로 촌지를 주던 슬픈 기억 때문에 난 아직도 기사 크기를 보며 촌지 액수를 맞춰 보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정도면 밥 한번 사는 걸로 때웠겠구먼… 이렇게 사진까지 실렸으니 엄청 줬겠는걸…’

그러나 이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이젠 돈 받고 기사 써주는 기자는 없겠지.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진다. 아직도 촌지 받는 기자 있나요?


신상훈/ 방송작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