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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3 17:54 수정 : 2005.06.13 17:54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 \

나라마다 사법제도가 약간씩 다르다. 그 나라에 고유한 법제와 전통에 따라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도, 섬기는 방법도 다르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의 특성 중에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법원과 검찰의 지위가 동등하다는 것이다. 판·검사의 자격요건도 동등할 뿐만 아니라 국가 공무원으로서 대우도 동격이다. 각급 법원과 검찰청 건물도 엇비슷한 규모다. 형사사법의 본질적 기능상 검찰은 변호인과 함께 법원의 판단에 자료를 제공하는 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판사의 자격요건을 검사보다 훨씬 높게 요구한다. 판사는 일정기간 변호사나 검사의 경력을 거친 법조인 중에서 임용하는 것이 상례다. 게다가 일단 판사가 되면 판사로서 법조경력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기에 ‘전관예우’라는 비리가 탄생할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검찰이 유난히도 강한 것은 이러한 법원의 취약성과 무관하지 않다. 판사들이 최선을 다해도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은 근본 이유도 경력상의 권위가 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젊은 나이에 임용되어, 뭔가 알만한 나이가 되기 무섭게 물러나는 판사의 판단에 경의를 표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근래에 들어와서 검찰이 집중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마치 검찰이 ‘공공의 적’인 양 너나 할 것 없이 비판에 나서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의 비호 아래 무소불위 힘을 행사하던 과거의 검찰을 생각하면 검찰권을 축소하는 것이 민주 세상에 합당한 개혁이다. 우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어야 한다. 모든 권력은 남용될 소지가 있다. 국민과 일상적 대면관계에 있는 기관이라야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용이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보다 경찰이 훨씬 감시하기 쉽다. 그동안 경찰의 인권유린이 비교적 소상하게 드러난 것도 감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의 입장에서는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수사권 일부를 경찰과 나눌 필요가 있다.

한편 고위공직자의 비리 수사권을 검찰에서 분리시켜 다른 기관에 주려는 시도도 있다. 검찰은 ‘정권의 시녀’가 되기 십상이기에 보다 독립된 기관에 권한을 준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직의 원리로 보나 현실적 효용으로 보나 합당한 개혁안은 아니다. ‘정치검찰’을 만든 것은 검찰 자신 못지않게 역대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나라에는 반드시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기관이 있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검찰 이외의 다른 기관을 생각하기 어렵다. 고위공직자나 대통령 측근의 비리 수사권을 검찰 이외에 별도의 기관에 준다면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을 것이며 더욱 더 정치적 영향을 받을 우려가 크다. 새정부의 출범 이후 검찰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를 용인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적도 크다. 나라가 민주화의 길을 걸으면서 검찰의 위력은 떨어졌다. 그러기에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검찰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사개추’의 개혁 시안에 담긴 ‘공판중심주의’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을 법원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세부내용은 현재로서는 너무나 이상적인 느낌이 든다. 현재의 법원의 역량이나 낮은 국민의 신뢰를 감안하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한 숨 늦추어 숙고할 일이다.

민주사법을 세우고 민주검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국민 모두의 몫이다. ‘과’(過)는 쉽게 드러나지만 ‘공’(功)은 잊혀지기 십상이다. 과거 검찰의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검찰만이 아니라 대통령, 정치인, 그리고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아무리 미워도 검찰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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