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4 19:12
수정 : 2005.06.14 19:12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접수실의 간호사들이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감기, 치통, 치질, 강간 피해, 성병 등 세상에 존재하는 질병과 고통의 수만큼이나 그 대답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이 짧은 대화가 사소하게 들려도,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소중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밀한 질문을 던지면서 대기실의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는지 신경 쓰며 목소리를 낮춰주는 병원 직원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나는 심지어 임신 검사를 하러 온 여성에게 바로 검사 기구를 내 주고 화장실에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한 다음, 다른 환자들로 꽉 찬 대기실에서 큰 소리로 “임신인데 낳으실 거예요?”라고 묻는 산부인과 간호사를 본 적도 있다.
이게 개인 병원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5년 연속 브랜드파워 1위’의 대학병원에 한 번 가보라. 그 병원의 외래 진료실마다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곳은 언제나 최소한 세 사람의 환자와 그 가족들로 북적거린다. 진료실 중간에는 엷은 커튼이 드리워 있고 그 안에서 의사와 환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커튼 밖의 대기 환자와 가족들은 그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에 본의 아니게 귀 기울이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나도 역시 그 짧은 대기시간 동안, “수술 안 받고 그냥 죽겠다”고 고집피우는 시골 어르신이나, “몸이 안 좋은데 성관계를 맺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 중년 남성의 깊은 고민을 엿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나의 상담 내용은 자동적으로 내 뒷사람들의 차지가 되는 셈인데, 공개가 강요된 이런 ‘고백성사’는 커튼 이쪽과 저쪽의 누구에게도 유쾌하지 못한 쑥스러운 경험이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드나들던 30여 년 전에 비해 시설 면에서는 엄청나게 현대화되었지만, 진료실의 대화를 남이 듣게 되는 그 병원의 열악한 인권 환경만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병원 직원들의 질문 태도가 헌법상 보장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위 대학병원의 경우는 진료체계 자체가 처음부터 아예 사생활을 침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커튼 하나는 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의사들은 의료 수가가 너무 낮다며 보건정책 쪽으로 책임을 돌리려 할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만 터지면 너도나도 신상공개부터 요구하는 ‘프라이버시 불감증’의 나라에서 병원만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백보 양보해도, 대기실에서 큰 소리로 환자의 질병을 묻거나 서너 명의 환자를 한꺼번에 진료실로 밀어 넣어, 다른 환자들을 사생활 침해의 공범자로 만드는 잘못된 체계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환자들은 병원 입구에 인권을 맡기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다시 그걸 찾아 나와야 했다. 환자는 ‘완전하거나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못하므로 전문가인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권리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오해가 우리 의식을 지배해온 결과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 전체가 민주화되어 가는 추세에 맞추어, 대형 병원부터 앞장서서 인권이라는 새로운 잣대로 진료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의과대학에서도 철저한 인권 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의료 서비스를 평가하는 기관들의 평가 항목에도 환자의 인권이 추가되어야 한다. 환자의 마음과 형편을 헤아리지 못하는 병원의 ‘브랜드 파워 1위’, ‘의료 서비스 1위’ 자랑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두식/ 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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