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5 19:55
수정 : 2005.06.15 19:55
2005년이 시작됐을 때 일본에서는 동아시아 세계가 새로운 역사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감이 확산됐다. 올해 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의 첫 동아시아정상회의가 열려 동아시아공동체의 실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에선 ‘한류열풍’ 등으로 마침내 융화의 시대가 찾아온 것처럼 얘기되고 있었다. 올해는 ‘한·일 우정의 해’ 사업을 통해 우호 관계가 더 깊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나도 이를 바라마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논의가 역사라는 측면에 너무 눈을 돌리지 않고 있는 것에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국교정상화 40돌을 강조한 나머지, 올해가 1895년의 명성황후 살해 110년, 1905년 을사조약 체결 100년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일본에선 완전히 누락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실과, 한국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특별법’에 근거한 피해조사의 결과에 따라나선 이를 강요한 일본의 대응이 다시금 추궁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역사인식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전후 처리를 적극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아사히신문>(2월9일치) 기고를 통해 호소했다.
그러나 이 글과 관련해 한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이라는 비난과 함께, 신문에 실린 나의 얼굴 사진에 검은 테두리를 붙인 엽서 등이 배달돼 왔다. 사진에 검은 테두리를 붙이는 것은 사망선고라는 뜻이다. 그것 자체는 애들 장난과 비슷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이런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올해 들어 일본의 외교논의가 극히 고압적이고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지배되고 있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런 내셔널리즘의 주장은 한·중의 반일 시위 고조와 더불어 일본 사회에 급속히 침투해, 한·중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외교론이 돼 왔다. 일본뿐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에서 정부와 의원은 선거민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교에 관해선 그 결정이 직접 국민의 이해와 관계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상대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의연하고 훌륭한’ 정치가라는 평가로 연결되기 쉽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긴밀해야 할 한·중·일이 대립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낳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타국을 비난하고 대립을 부추기며 자국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정치가는 애국적이며, 대립을 완화시켜 타협점을 찾아내려는 정치가는 매국적이라는 ‘딱지 붙이기’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 텔레비전 등에서 보이는 일본의 상황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논조가 침투돼 가는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내정과 외교를 논의해온 ‘논단’이라는 신문과 잡지의 활자 문화가 붕괴하고, 그 대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정치적 논의를 이끌고 있는 것이 큰 요인이다. 즉,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텔레비전에선 순간적인 자극적 발언이 요구되고 그 의미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텔레비전 스튜디오라는 좁은 공간의 토론에선 더 과격한 발언이 ‘정론’처럼 받아들여진다. 타국과 협조 등을 말하는 것은 평범하고 들을 가치도 없는 발언으로 경멸당한다.
신문이나 잡지라면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생각하는 게 가능하지만, 텔레비전의 발언은 한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자극적 발언의 인상만 남을 뿐이며, 그것이 마치 일본 전체의 여론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또 익명의 인터넷은 상대를 매도해 스스로를 과시하는 내셔널리즘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면적 상황의 뒤편에 동아시아 세계를 국경·민족을 넘어선 사람들의 공생의 장으로 만들어가려는 침착하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연결해가는 노력을 단념하지 않는 것이다. 그 때 도구에 지나지 않는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중요한 무기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때의 쾌감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것은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으로, 그 침은 결국 스스로에 떨어져 내린다.
야마무로 신이치/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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