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6 19:54
수정 : 2005.06.16 19:54
최근 광주에서 열린 한-중 미래포럼에 참가한 중국 외교관들이 보여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태도에 대해 한 일간지의 기자는 루쉰이 중국 민족성의 열악함을 지적하면서 말했던 ‘정신승리법’을 들이댔다. 적어도 북핵 문제를 다루고 있는 지금의 중국은 바로 아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가 다 알겠지만, 루쉰이 말한 ‘정신승리법’이란 〈아큐정전〉의 아큐가 보여준 노예근성을 말한다. 당시 반제반봉건 하의 중국 민중들 상당수가 아무리 능멸을 당해도 결국은 자신이 이긴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노예적 삶을 이어가고 또 재생산 해내는 동력은 바로 이 ‘정신승리법’ 때문이라고 개탄했었다.
아마도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안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중국 외교관들의 모습이 칼럼을 쓴 그 기자의 입맛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한다거나 더 강한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데도 평화 타령만 하고 있으니 정신승리법에 빠진 아큐처럼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 중국 외교관들을 그렇게 본다면 그들을 ‘정신승리법’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 세력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 세력이 북한이 될 수 있고 미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중국은 결코 정신승리법에 도취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국을 현재 압박하거나 능멸하는,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세력이 없으니 정신승리법은 성립하지도 않거니와 최근 그들이 외교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몇 가지 예를 보아도 그렇다. 최근 중국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고도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자국민의 자존심을 긁어대는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의 행각을 보고 총리 면담 몇 시간 전에 귀국해버리는 우이 부총리의 모습에서 어떻게 아큐를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북한을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불량국가 중 하나로 지적해 놓고 이러저러한 협박을 가하는 미국을 대신해 무조건 총대를 멜 수만은 없다는 중국이 왜 아큐란 말인가.
고이즈미 총리가 의외로 잘못 풀린 중-일 관계 속에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중국을 잘 알고 있는 후쿠다 전임 관방상이 총리로 주목받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할말을 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 앞에서 일본은 그나마 조그마한 전술적 자기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이 ‘정신승리법’에 빠진 아큐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무리가 있다. 송유관을 잠가버리거나 식량원조를 중단한다거나 하는 협박과 공갈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맥없는 아큐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통용되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속의 그 누군가가 한반도의 안전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서는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는 제한적 선제공격도 고려해야 한다는 미국의 강경 주장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내세운다면 그 모습이야말로 아큐가 아닐까? 아큐는 자신을 착취하는 대지주 앞에서 자기가 먼저 자기 뺨을 때리거나 자기보다 힘없는 비구니를 능멸하는 비열함을 보여주는 다양한 ‘정신승리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노예근성에 다름 아닌 정신승리법에 빠진 자가 누구인가? 중국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아니면 중국을 아큐로 보고 있고 또 보고 싶어하는 그 누구인가?
김종현/ 동아대 중국일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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