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7 18:10
수정 : 2005.06.17 18:10
|
허종식 경제부 부동산 팀장
|
서울 강남, 경기 성남 분당을 중심으로 집값 오르는 소리가 ‘3억, 5억, 10억’으로 날이 갈수록 높게 들려온다. 서민들은 ‘억, 억, 억’ 하는 소리가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힌다.
전국이 강남·분당·과천·평촌의 중대형 아파트를 진원지로 한 부동산 열풍에 들끓고 있다. 이 특정지역 주택시장의 문제는 감내할 정도를 이미 넘어섰다. 언제 주변 지역으로 급격히 파급될지 모르는 화급한 지경이다. 부동산가격 상승은 투기 수요를 끊임없이 유발해 경기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근로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불로소득이 눈에 보이는데 열심히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부동산을 담당하는 기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부동산 폭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특정지역만 오르는 국지적 양상인가 전국적 양상인가, 정부는 무슨 대책을 내놓을지 귀를 세운다. 편집국 안에서도 “세금으로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공급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며 여러 의견이 나온다. “무슨 나라가 이 모양이냐”는 분노에 찬 목소리도 들려온다.
올 들어 3~4개월 동안 집값이 3억~5억원 정도 올랐다는 분당 파크뷰에 사는 주부도 만나고, 서현동 삼성아파트 앞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시민이 “아들이 취업한 지 올해 1년 됐는데 몇년을 벌어야 집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는 모습도 본다.
혼란스러운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상황이 어지러울수록 원칙에 충실하는 게 정도일 터이다.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가지 않고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게 되면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킨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보유세제 강화 등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집값이 올랐다면 오른 가격에 비례해 집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게 당연하고,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에 주력하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떠올린다.
가격 폭등으로 얻은 3억~5억원의 불로소득은 서민들이 평생 만져보기도 어렵다. 지난해 말 종합부동산세 도입 법안이 누더기가 되어 국회를 통과하자 ‘무늬만 법'이라고 통탄했던 국회 재정경제위 소속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달에 180만원을 받는다. 민주노동당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임금으로 본 금액이다. 단순 계산으로 매달 100만원은 생활비로 쓰고 80만원을 저축해도, 강남 일대에서 가만히 앉아 서너달 동안 번 돈을 만져보려면 30~50년 걸린다.
종합부동산세는 대상이 9억원 이상이다. 시가로는 11억원쯤 된다. 부부 공동 명의면 18억원이다. 시가는 25억원 정도다. 양도세 실거래값 부과도 현재는 대책이 못 된다. 거래가는 적당히 줄이고 나머지는 매입하는 사람에게 내게 하면 된다.
대통령, 총리 주재의 대책회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학과 일관성이다. 물론 집부자들의 편에 서서 툭하면 흔들어대는 정치권과 언론에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정부 안에서도 ‘코드’가 맞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시장논리만 앞세워 공급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펴는가 하면,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한 수단으로 여긴다.
언제부터인지 참여정부는 강남 주민들만 지지한다는 말이 나돈다. 서민 가슴에는 시퍼렇게 못박고 부자들한테는 불로소득을 안겨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팔이 집부자들 쪽으로 굽은 정치권, 언론보다도, ‘시장 원리’를 되뇌는 관료들이 더 큰 문제다. 말이 좋아 그렇지, 빈익빈 부익부를 용인하고 불로소득은 놔주자는 뜻이다. 권력을 시장에 내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정부인가?
허종식/ 경제부 부동산 팀장
jongs@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