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3 18:04
수정 : 2005.06.23 18:04
지난 5월에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마련한 형사소송법개정안은 종래 학계에서 주장되었던 ‘조서재판의 극복’과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지향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법제화로 이어지다면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법제상 검사는 공판을 준비하는 소추기관이다. 그런데 종래 검사는 자신을 법관 이외의 또 하나의 사법기관으로 치부하면서 검찰조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법관이 검찰조서의 내용을 신뢰하지 않으면 검사의 사법관성을 침해하는 부당한 조처로 간주하여 왔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 법관들은 조서뭉치를 집에 가지고 가서 읽고 심증을 형성하여 판결문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사개추위의 원안에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현행법보다 제한한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원안이 알려지자 평검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여 수정을 거듭한 결과 현재는 원안에서 크게 후퇴된 모습의 개정안이 실무위원회의 ‘5인 소위’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다.
‘수사력 약화’를 걱정하는 검사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물증이 없고 오로지 인증(자백이나 참고인의 목격진술)만으로 유죄를 입증하여야 할 사건이 많이 있다. 첫째, 많은 피의자들이 검찰에서는 자백해 놓고 법정에서는 부인한다. 둘째, 참고인은 검사 앞에서는 진실을 말하지만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는 공판정에서는 피고인과의 관계(친밀관계 혹은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허위진술하는 경우가 많다. 공판정은 ‘증인들의 거짓말 경연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면 수뢰죄, 조직범죄, 마약범죄 등은 유죄를 입증할 수 없어 무죄판결이 속출할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면 법관의 심리부담이 크게 증가하므로 현재보다 법관의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법원 패권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비판이다. ‘수사력 약화’를 걱정하는 평검사들의 걱정은 ‘반부패 투쟁’과 ‘조직범죄 억제, 마약퇴치’를 지향하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것을 ‘기득권 수호’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검찰조사 때 자백한 피의자의 자백진술이나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참고인의 진술의 진실성은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공판중심주의론자는 강압적 추궁으로 인한 검찰진술의 거짓진술 가능성을 염려하여 그것보다는 공판정 진술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데 반하여 검사들은 자신들의 심증의 정확성을 더 믿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참고인 진술과정을 녹음·녹화한 영상물을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은 현 국면을 전향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건전한 해결방안이다. 녹음·녹화절차를 상세히 법제화시키고 의무화시켜 조작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면 한편에서 강압적인 추궁으로 거짓진술을 얻는 위법수사를 억제할 수 있고 다른 한편 법정에서 거짓으로 진술을 번복하는 피고인이나 증인을 가려낼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매우 유익하다.
심희기/ 연세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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