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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6 18:14 수정 : 2005.06.26 18:14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부지런한 ‘정치상인’이었지만 훌륭한 기업가는 아니었다. 김 회장이 오랜 해외도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재계와 대우 임직원들 중 일부에서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지만, 재벌 총수간의 동업자 의식이나 과거 상사에 대한 충정 때문에 김우중식 경영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우중식 경영의 핵심은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지나칠 정도의 차입과 저돌적인 기업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추진되었던 1970년대 이후 정부가 부실기업 처리에 고심하고 있으면 김 회장은 선뜻 나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 대가로 금융지원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데 활용하곤 하였다. 김 회장처럼 정경유착과 대마불사의 원칙에 충실하게 기업을 경영했던 경영인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 몇 개의 중추기업은 초기 단계부터 핵심 역량 구축과 기술개발을 통해 성장시킨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나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는 달리, 김 회장은 기업의 덩치만 불렸지 핵심 역량을 배양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대우는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내실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경영의 내실을 기하기는커녕 ‘세계경영’을 표방하면서 정경유착과 대마불사의 신화를 신흥 시장에 전파하는 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기술력이 취약하여 선진 시장에서는 경쟁하기 어려웠고 국내 시장에서도 2류 취급을 받았던 대우의 김 회장으로서는, 옛 사회주의권의 실력자들과 담판을 지어 지원을 받고 신흥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뒤늦게나마 핵심 역량을 배양하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경영’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신흥 시장은 기대했던 것처럼 빨리 성장하지 못했고, 1997년 말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대우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더욱 더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게 된 환경이었지만 김 회장은 ‘정치상인’으로서 마지막 도박을 걸었다. 쌍용차를 인수하여 정부와 채권단의 근심을 덜어주는 한편 대우의 덩치를 더 키워 나갔다. 삼성과는 빅딜을 통해 삼성차를 인수하는 대가로 2조원을 받아 내려고 했다. 또, ‘정부가 5대 그룹은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팽배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1997년 말에서 1998년 9월 사이에 무려 17조원에 달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신규로 발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연간 국방예산인 14조원을 넘는 규모의 돈을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새로 빌린 것이다. 심지어는 제일은행을 인수하여 손쉬운 자금줄을 확보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삼성은 김 회장의 협박성 도박에 굴복하지 않았고 정부 역시 대우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결국 김 회장의 도박은 수십조원의 공적자금 부담을 초래하며 실패로 끝났고 말았다.

흥미로운 점은 김 회장이 물러나고 대우에 대한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뤄진 후 주요 대우 계열사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회장이 무리한 차입과 저돌적인 기업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데 치중하지 말고 핵심 역량을 배양했더라면, 대우의 인적자원을 가지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관측이 가능한 것이다. 김우중식 경영에 대해 우호적인 ‘재평가’를 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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