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6 19:12
수정 : 2005.06.26 19:12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는 어느덧 나의 소울 메이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울 메이트와 나는 매일 밤 아주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다음날 아침 배달될 신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니(인터넷한겨레)를 통해 살짝 먼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멱 감는 아낙네를 훔쳐 본 악동들 마냥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앞다투어 재잘댄다.
적지 않은 신문의 홈페이지에 포르노와 다름없는 사진들이 널려 있지만 하니는 그렇지 않다. 딸과 함께 마우스를 움직일 때에도 혹시나 원치 않는 화면이 튀어나올까 가슴 두근거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니를 딸과 생각을 나누는 장으로 택한 이유는 지난 17년간 <한겨레>가 보여준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따듯한 시각 때문이다. 아파트촌에서 자라 아파트촌의 아이로 이뤄진 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획일적이고 또 너무 개인적이다. 이 아이에게 하니만큼 서로 다름 속에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할 수 있는 교과서이자 놀이터는 없을 것이다.
<한겨레>가 제2창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질적·양적 성장을 위해 또 하나의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시도라고 믿는다. 사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한겨레>의 역사는 곧 한국 민주화의 역사였다. 87년의 시민 정신을 제도화시키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고, 또 진보 정치의 싹을 튀우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한겨레>가 있었다. 아니 그러한 현장을 만들 수 있도록 국민의 힘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겨레>에 맡겨진 역사적 소임의 성공적 수행은 <한겨레>를 시민 사회보다는 국가권력에 더 가까워 보이게 하는 역설을 낳기도 하였다.
<한겨레>가 제2창간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적 양극화와 노령화 등 민주화 이전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문제가 어렵고 해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민주화 이전보다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겨레>가 치열하게 진실을 보도하고 전문적인 분석과 현실적 대안 제시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또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니를 즐기는 딸아이는 미국 유학시절 가졌지만 한국으로 원정출산 와서 낳은 아이다. 미국 땅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었다. <한겨레>가 엄마의 판단이 틀리지 않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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