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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8 16:54 수정 : 2005.06.28 16:54

지난 19일부터 24일까시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는 최초로 아시아 지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존재해 왔던 동·서양 여성학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여성학대회 쪽이 정한 이번 대회의 슬로건도 이런 맥락에 맞춰 ‘경계를 넘어서:동-서, 남-북’이었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더 나아가 남반구와 북반구의 자본력 차이를 극복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나는 ‘차이와 경계’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인식했다.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번째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영어실력이고, 둘째는 교통비·참가비를 감당하고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다. 아침 총회와 개·폐막식만 통역이 이뤄졌을 뿐 행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과회의들은 발제와 질의·응답이 영어로 이뤄졌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한 발표자는 힘겹게 영문 발제문을 읽고 난 후 영어로 쏟아지는 질의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진땀을 흘렸다. 직접 통역할 사람을 데리고 오거나 순차통역 자원봉사자를 요청한 사람들도 있지만 한 사람당 발제시간이 정해져 있어 말할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경제력의 문제 역시 제3세계 여성들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많은 발표자들이 비자를 받지 못해 아예 대회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제3세계 여성들이 발표하기로 되어 있던 많은 분과회의가 취소되거나 발표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20만원의 참가비는 돈 없는 활동가들이나 학생·시민들의 참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영어와 경제력’이라는 두 가지 조건에서 탈락한 많은 사람들을 제외해도 2500여명의 저명한 여성학자들이 남았으니 세계여성학대회가 권위있는 국제행사인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조건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대부분 가난한 제3세계의 여성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차이와 경계’의 문제는 심각하다. 동양보다는 서양, 남반구보다는 북반구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기반 위에서 ‘경계를 넘어서’라는 슬로건이 힘을 잃는다.

대회장을 떠나며 “국제학술대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영어 못하고 돈 없는 여성운동가들이 여기에 올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남긴 한 발표자의 말처럼 차이와 경계는 여성학에서 여실히 존재함을 일깨워준 세계여성학대회였다.

김강지숙/이화여대 국문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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